나는 산 위에 지은 집을 그린다. 빽빽이 자리 잡은 집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며 인간의 의지와 생명력을 담은 공간이다. 산을 이루는 선을 따라 집을 배치하고, 때로는 물감을 긁어내거나 뜯어내며 산맥이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자연과 인간이 얽힌 관계를 표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은 언제나 나의 작업을 지탱하는 바닥이자, 서서히 스며드는 안개처럼 작품 속에 깔려 있다. 나는 시간을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고 되감기며 흔적을 남기는 층위로 느낀다. 산 위에 덧대어진 집들,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삶의 단면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기억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시간의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부산에서 시작된 나의 작업은 피란민의 흔적을 따라 걷는 시간에서 출발했다. 무덤 위에, 산비탈 위에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은 집들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닌, 시간의 밀도와 생의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그 풍경은 내 안의 불안정한 정착의 기억과 겹쳐졌고, 나는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했다. 한 번의 이주, 두 번의 이사, 그리고 다시 새로 자리를 잡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싸우며 동시에 그것에 기대어 살아왔다.
시간은 흔히 흘러간다고 말하지만, 나는 시간을 '쌓이는 것'으로 인식한다. 내 그림에서 산은 시간의 덩어리이고, 그 위에 얹힌 집들은 기억의 조각들이다. 나는 그 조각들을 이어붙이며, 과거와 현재, 나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엮는다. 때로는 한 줄의 선이 기억을 꿰고, 때로는 번진 색이 아물지 않은 감정을 드러낸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점점이 흔적을 남기는 어떤 것.
이 작업에서 나는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고, 서서히 바라보고, 마침내 멈춰 세운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한 장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간층'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낡은 지도처럼 읽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오래된 꿈의 기록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은 삶을 퇴색시키기도 하지만, 그 위에 새로운 생을 싹틔우기도 한다. 나는 그 모순을 껴안고, 나만의 색과 선으로 시간을 번역해 나간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도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쌓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 다시 그림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