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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계절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장마가 찾아왔으며, 겨울이 되면 물은 얼었다. 강물은 익숙한 방향으로 흘렀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면서도 나름의 질서와 균형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익숙했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후 변화와 반복되는 재난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균형이 더 이상 견고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변화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작은 흔들림으로 시작되어 서서히 축적되고, 어느 순간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나는 플라스틱이 변형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이러한 풍경을 떠올렸다.
외부의 압력과 열을 받은 플라스틱은 한동안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이 계속 축적되면 표면은 흔들리고, 굽어지고,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물질은 더 이상 이전의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기포와 균열, 흐름과 뒤틀림은 물질이 스스로의 경계를 벗어나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단단하게 유지되던 표면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힘들은 천천히 형태를 바꾸어 놓는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완전히 변한 결과가 아니라, 이전의 상태와 이후의 상태가 잠시 공존하는 그 짧고 불안정한 순간이다.
대청호의 물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풍경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수위는 변하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며, 인간이 남긴 흔적들은 물 위를 떠다닌다. 내가 플라스틱의 물성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이 풍경을 바꾸듯 시간은 물질을 바꾸고, 우리는 그 변화가 충분히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알아차린다.
《흐르는 물성》은 물과 물질에 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관계와 순환에 대한 기록이다. 물은 수많은 생명과 흔적을 품고 흐르며, 물질 또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발견한 작은 징후들을 기록해 왔다. 이번 전시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세계를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고, 서로 연결된 존재로서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희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