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교육의 현주소와 내용을 정리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필자가 참여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국가별 사회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사례연구”의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경험치를 시민의식으로 만드는 프랑스
시리즈1에서 프랑스 예술교육에 대한 글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였다. 많은 이야기를 쓰려다보니, 짧은 지면에 많은 이야기가 녹아져 버린 것이다. 하긴 프랑스의 예술교육에서 쓰자면, 그 다이내믹하고 스토리 많은 프랑스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만들어낸 혁명, 사회적 합의, 역사적 퇴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역사와 사회적 경험치를 그들의 삶에 녹여내는 힘은 그들을 사유하는 인간으로 보다 진화시켰다. 테러리스트들의 폭탄이 파리시를 강타해도 ‘범죄자들이 원하는 것은 파리 시민들이 동요하고 겁내는 것’이라며,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마시면서 인증 샷을 찍는 사회 분위기는 그들의 튼튼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뉴욕타임즈는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파리 테러 1주일 후 ‘파리 시민들은 일상을 지키는 것이 테러에 맞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엄청난 재난을 겪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정작 파리 시민들은 테러 며칠 후 다시 카페에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2015년 11월 17일 뉴욕타임즈 인터넷 판 동영상 기사 “French Return to Cafes in a Show of Defiance” 갈무리)
평범함 속에 사회의 가치를 담는다.
이러한 프랑스식의 시민의식은 단지 가정교육, 학교교육이라는 양분된 교육체계로서는 불가능하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많은 프랑스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녹아져 있는 그 무엇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편의 글에서 필자는 프랑스 예술교육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었다. 첫째, 교육 중심이 아닌 활동 중심의 프로그램. 둘째, 인문학적으로 설계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셋째,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사실 필자는 프랑스 예술교육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의 예술교육을 설명하는 많은 글과 동영상을 보면서 갖고 있던 의문이 있었다. “왜 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은 이렇게 장르적일까?” 장르적 틀을 벗어나자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과 다르게 그 모델이 되는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은 장르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상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몇 년 전 7개국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연구를 하면서 다시 고민에 빠졌었다. 이때는 연구자로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어야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몇 개의 시설의 프로그램을 검토하면서 장르적이고 일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일반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예를 들면 파리 근교에 있는 몽트뢰이시(Montreuil)의 <몽트뢰이 민중의 집(Maison Populaire à Montreuil)>을 보자.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활발하다는 그 시설의 주요 프로그램을 보면 별 다르지 않다.
<몽트뢰이 민중의 집의 주요 프로그램>
| 분야 |
프로그램 |
| 시각예술 |
수채화, 데생, 조각, 모자이크, 도자기, 디지털사진, 필름 사진. |
| 디지털예술 |
3D애니메이션, 시네마, 그래픽디자인, 인포그래픽, 비디오몽타쥬, 컴퓨터음악 |
| 커뮤니케이션 |
블로그 만들기, 인터넷사이트 만들기, 인터넷 활용 입문 |
| 언어 |
영어, 아랍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
| 음악 |
합창, 악기(드럼, 클라리넷, 기타 등), 음악학, 재즈 밴드, 쳄버뮤직 등 |
| 연극과 무용 |
연극, 아프리카 무용, 현대무용, 살사, 탱고, 락앤롤 무용 등 |
| 신체훈련 |
합기도, 카포에라, 체조, 요가, 기공, 스트레칭 등 |
2008년 파리시가 문화협력을 통한 창작 및 전시 공간을 목적으로 조성한 복합문화공간 <104 파리(Cent Quatre Paris)>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104 파리>는 우리나라에서 우수 사례라고 견학도 자주 가는 공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프로그램을 구성과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풀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필자가 캐나다의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을 보면서 이미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캐나다에서 엄청난 듯 하게 보이는 프로그램을 막상 가서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보조강사로 수업을 지원할때마다 느끼는 그 시시함. 너무나 장르적이고 시시한데도 대단한 듯 하게 참여자를 독려하는 그 오글거림. 과도하게 아이들을 칭찬하면서 관계를 독려하는 교사의 신들인 연기력. 그런데 그러한 것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다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나왔다. 캐나다 예술교육은 “공동체”라는 가치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신들린 촉진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실수가 일어나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 전체가 하나의 과제를 수행한기도 한다. 장르는 그저 녹아 있는 수단일 뿐이고, 이들은 관계 속에서 작동하며 자기의 역할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며, 서로를 끝도 없이(아이들도 정말 끝도 없이)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 예술이 하다.
프랑스의 예술교육도 그러하다. 장르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하나의 틀이고, 작업이다.(그래서 그들은 예술 활동 공간을 작업장 즉, 아뜰리에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과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구체적인 작업을 통해 행복, 관계, 가치 등의 추상적 의미를 사유하게 한다. 언어화되지 않아도 가능하다. 바로 예술이 그러한 수많은 은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04-파리> 프로그램의 하나. 프랑스의 예술교육은 예술교육에 엄청난 국가적 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 참여자가 스스로 참여하면서 생각하면 족하다. 그것이 예술적 접근이며,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면서 자기 길을 찾는다고 믿는다. 너무나 많은 과제를 안고 아무런 흥미와 호기심도 발휘할 여유가 없는 한국의 아이들과는 환경적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교육은 수많은 철학적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 프랑스 청소년들이 치르는 시험문제가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엄청난 철학적 논제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기술하는 것을 보고 한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문화예술활동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프로그램은 철학적 논제를 담은 설계를 하고 있는데 프로그램명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104 파리>에는 철학과 함께 하는 간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랑스 아이들에게 오후 4시는 간식을 먹는 시간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는 <104 파리>내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철학자와 아이들이 만나, 간식을 나누며, 철학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프로그램에 기교 없이 그냥 직구처럼 들어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과정은 다르다. 교사의 역할, 아이들과의 관계, 아이들 간의 관계, 문제를 직면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경청하는 자세 등 프로그램 곳곳에 예술적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제목을 그렇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혹은 기획자가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설계하였다는 점을 의미하며, 이는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은 콘텐츠가 아니라 방법이며,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