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9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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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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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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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화가, 웹진[충북아르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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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문화와 예술에 관한 고정관념과 충북 문화예술교육

새로운 웹진의 운영을 축하하며!
충청북도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글을 부탁받았다. 본인은, 지금 충청북도 문화예술교육은'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제기에 앞서 '문화란 것은 왜 있어야 하며 예술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라고 물어본다. 명확한 정의가 어려운 커다란 질문 앞에서 우리는, 애써 외면하는 무관심과, 문화예술은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는 효율적 태도, 아이들의 인성과 교육에 도움을 준다는 기능적 태도, 마냥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는 무책임한 태도 등 많은 부정적 반응들을 행하거나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이 어쩌다가 이 지경의 대우를 받고 있을까?

우리의 사상 전반에 깔린 현대 소비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예술이야말로 유형의 재화를 창출하는 것과 정반대에 있어 보인다는 편견이 지배하기 때문일 터다. 그렇지만 많은 성공한 사업가와 현대의 리더들은 예술적 창의력이 가장 중요한 미래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산업사회가 시작되던 18세기의 유럽에서 ‘예술교육’이란 귀족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정도로서 물론 값비싼 것이었다. 그러한 비싼 교육이 현대에서는 국가 단위의 무료 교육이 되었다. 교육은 본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당시의 교육에서 예술을 굳이 배울 필요는 없었다. 예술을 배워야 하는 종류의 사람들은 귀족과 재력가의 자제들로서 상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기본소양을 배워야 했기에 그 필요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러한 교육을 받질 못했다. 즉 산업사회가 예술교육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문화교육이란, 또 예술교육과는 다르다. ‘문화’란 산업사회라는 시대적 특성과 전쟁과 정치 등의 특수한 환경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정서 같은, 커다란 무엇이기 때문에 굳이 고급의 예술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시대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와 윤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교육이란 그렇기에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이고 그 특이성은 인간이라는 특별한 개체가 가지는 사회적 속성과 표현 욕구의 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상류계층에서 분리된 문화라는 대범주 속에서, 예술은 대중-예술이라는 특수한 예술로서 발현되었고 그것이 현시대까지도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문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지표로서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귀족들이 발전시켜 온 상류계층의 예술은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의 오랜 시간 동안 각 사회의 상류층들은 과학과 철학, 예술을 각 사회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급, 장려해왔다. 귀족들의 예술 사랑은 집단 내의 천재들을 만들어내며 첨단을 향하고 있었다. 첨단이란 즉 인류의 정신과 기예에 가장 앞에 서 있는 아방가르드 정신일 게다. 천재에서 엘리트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첨단의 정신은 여전히 사회적 진보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문화예술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보이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으로서는 산업사회 시절부터 구축되어 내려온 공공교육은 문화예술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구성원을 양성해 냈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사회는 고도의 빠른 산업사회를 경험하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 온 교육이란 것은 산업사회의 일원을 양성하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문화예술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인이 되어서 그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은 많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우리의 문화예술 인식 수준은 냉정히 바라본다면 산업사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엘리트예술과 대중예술의 결합, 대량생산에서 소량생산으로의 전환, 공산품에서 고급 브랜드로의 전환 등 현대의 산업과 문화는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중요한 가치는 천명의 보통 사람보다는 한 명의 천재를 더욱 높이 사는 풍토로 변해왔다. 많은 리더들이 전하는, ‘창의력이 중요하다’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충북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본인의 생각으로서는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산업의 일꾼으로 자신도 모르는 채 교육 되어진 어른세대들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어른의 생각과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것을 배운다 한들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고 그것을 배척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이 미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수많은 말들 앞에서 문화와 예술은 어느덧 아이들의 창의력 커리큘럼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는지 의심해 본다.

두 번째로, 예술을 마냥 좋은 것이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은 시대의 아름다움을 대변할 수도, 혐오를 대변할 수도, 아주 사악한 것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이다. 선과 악의 윤리로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을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만 보는 견해는 예술의 오래된 편견이다.

세 번째로는 문화의 힘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산업은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능성만을 강조한다고 산업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란 곧 산업이라는 방향을 가졌으면 한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과 제한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인식적으로도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맛집처럼 소개되는 웹진보다는 날선 비판과 격려가 오가는 생생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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