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독일사회
이런저런 연유로 베를린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여전히 말 그대로 익사이팅하다. 사람이 사는 곳은 시간이 지나면 어디든 비슷해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독일사회의 시스템만큼은 갈수록 이곳, 대한민국과 매우 다름을 인지하게 된다.
처음 내가 독일에 갔을 때, 예술가(미술가)로 살기라는 지극히 개인적 목표를 가지고 갔지만, 독일의 사회적 구조나 시민들의 의식 등에는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 안의 구조적 합리성과, 한국보다 발전한 민주주의적 시민의식은 나를 어른스럽게 설득시키는 강건함이 있었다. 물론 한국인의 정서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번 글은 사회문화에 관한 것인 만큼, 그곳의 전반적 문화예술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짧게나마 소개하겠다.
철저하고 안정적인 지원 시스템
독일은 첫째로 철저한 시스템의 국가이다. 이는 여러 정책들이 필요한 곳에, 가능한 한 평등하게, 가능한 한 많은 시민들을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뼈대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정직한 세금징수를 거쳐, 거시적으로 안정된 선진국가를 이루어 내었다.
독일은 여타 북유럽 국가들처럼 사회복지 수급이나 사회보장제도라는 안전망이 잘 정착된 국가이다. 대학을 포함한 정규 교육비용은 물론, 실직 후의 직업교육 비용도 사회 공동부담이다. 자기가 어려울 때 사회체제가 도와줄 것이라는 든든한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인지, 독일 시민들이 일하는 모습에는 한국과 다른 무언가가 있음에 놀라기도 한다. 고지식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답답해 보이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다. 즉 스스로 타이밍을 조절하면서 시장과 맞물려 나가는 것이다. 이는 대학을 포함한 학교교육과, 예술가라는 직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둘째로, 그러한 정책적 시스템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발현 가능한 창의적 예술 선진국이다. 예술이란 것이 아쉽게도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맞물려 가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독일의 미술대학 교육제도는 단연코 우리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미대 입학을 위해서 최소 2년 이상 미술학원에 다녀야 한다. 이는 안타깝게도 천민자본주의적 문제점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드러나 창의적 성격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 매월 많은 돈은 쏟아 부어야 하고, 자유로운 표현 의지보다는 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예술과 기술, 손재주는 분명 다른 표현방법이고, 장인과 예술가는 또한 명백히 다른 분야인 것이다.
독일의 미대 입시
독일 미대 입시는 100% 입학생의 재능과 창의를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 포트폴리오 제출과 실기시험으로 판가름 난다. 당연히 한국에서처럼 수많은 미대 입시학원은 볼 수 없다. 입시생이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다 문제가 있거나 충고가 필요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수를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기도 한다. 물론 무료이지만 그만큼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많은 교수들이 처음에 거절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춰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열정을 보인다면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열정과 재능을 갖춘 끼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는 것도 교수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주로 세계적으로 인지도 있는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교수로 스카웃하는 만큼, 그들과의 컨텍은 입시뿐 아니라 향후 겪게 될 과정에도 결정적 도움이 되며, 이 도전적 근성 또한 졸업 후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처음 경험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고 본다.
독일 미대를 진학하려 하는 한국의 유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과연 몇 명이나 그 땅에서 다른 아르바이트 없이,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미대 진학 후, 학생들은 동료들 사이에서 스스로 배움을 터득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의 교수 밑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도제적 시스템은 교수는 물론 같은 반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토론과 비평을 주로 하며 자연스럽게 칭찬과 비판의 문화를 배운다. 그리고 교수, 학생의 관계를 상하로 보는 것이 아니다보니, 학생 또한 교수의 의견에 반하는 의사를 당연한 듯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때로 서로 맞담배까지 물고서 말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물론 나라마다의 정서적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이 지배하는 국가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로서는 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항상 한계의 극복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분야인 예술에 있어서, 이처럼 권위라는 형식을 버리고 오갈 수 있는 대화는 결국 창의성의 극대화와, 다양성의 공존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최근 5년 사이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미대 졸업 후, 한국에서처럼 미대 입시지도를 많이 하고 있다. 한국적 생존본능과 입시열병을 물려받은 채, 만들어낸 포트폴리오로서 독일 미대에 입학하게 되면 더 큰 산처럼 겪게 되는 그 엄청난 시스템의 혼란과 정서적 차이에서 오는 2차적 난감함 또한 미리 마음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족 집단주의적 정서 속에서 살아왔다. 타지에서 홀로서기란 극단적 결심 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예술을 공부하고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스스로의 개혁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천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독일 교수가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호평을 한다면 이는 반어적으로,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은 어김없이 이 칭찬을 듣는다. 아쉽게도 말이다.
타지에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쉬운 방법 찾기로, 같은 동포사회에서 모국어로 주로 이야기하고 한국의 대중매체만을 즐겨 보는 것은, 장기적으로 의미가 적은 외국 생활을 하게 만든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문화수용 방법의 하나이다. 독일, 특히 베를린은 미술관, 콘서트, 연극 등 수준 높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일상 주변에 놀랍도록 저렴하고 말 그대로 넘쳐난다. 매일 잠시라도 다이어트 운동을 하듯 의식적으로 챙겨 즐기다 보면, 어느덧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적 사고를 하게 되는 큰 재산이 되어 있음에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간단하게 한 전시 광경을 첨부하고 싶다.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도, 또한 소비하는 입장에서도 어떻게 다양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작년 2017년 7월에 있었던 베를린에서의 한 예술 프로젝트에 관한 사진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약 60여 명의 현지 미술작가들이 커다란 행사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낡은 작업실 단지의 빈 공간을 활용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톱 작가들과 독일 미술대학 교수들도 참여한 프로젝트였지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축제처럼 이루어져 많은 일반 시민들도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단발적 행사였다.
베를린시 베딩(Wedding) 지역에 위치한 우퍼할렌(Uferhallen) 이라는 곳에서 열렸는데, 이곳 우퍼할렌은 2000년대 초반까지 베를린의 기차, 트램을 수리 및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몇 년간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2008년부터 미술작가들이 작업실로 사용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현재 약 70여 명의 작가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진지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그곳에 있는 일부의 빈 공간을 사용하여 전시장으로 활용한 전시의 장면들이다.
❶ 전시 오픈 날 행사장 출입구의 모습으로, 맥주를 들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지만,
절대로 문화예절에 어긋나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는다.
❷ 입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어느 작가의 모습과
그 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어린 관객들의 모습.
❸ 전시장 입구 주변으로 담소를 나누는 많은 관객들의 모습과,
그들을 위해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는 푸드 트럭의 모습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