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귀족 음악은 언제부터 ‘클래식(Classic)’이라는 보통명사가 되었을까? 그것은 일본과 미국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근대 문물의 하나인 축음기나 레코드판이 일본제국주의 관료와 일본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사이에 국내로 유입되면서 유럽음악 감상은 근대적 취미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엘리트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습득해야 할 교양으로 여겨졌다. 중세 유럽의 궁정과 귀족의 후원을 받아 작곡된 음악들을 감상함으로써 은연중에 자본주의 근대세계를 탄생시킨 선진 유럽의 문화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것이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결핍 요소들이 부분적이나마 해소되는 욕구 충족의 과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정치경제적 지배⋅종속 관계는 엘리트문화와 민중문화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켰다. ‘클래식’ 감상 행위는 교양 있는 인간의 고상하고 우아한 문화 향유행위라고 강제되었다. 타령과 시나위, 풍물과는 전혀 다른 신문명의 음악은 마치 커피의 맛처럼 독특하고, 철도의 기적소리처럼 우렁차며, 전등불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거대한 문화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서당 구조를 탈피한 ‘학교’라는 근대적 교육제도의 보급은 ‘클래식’의 확산에 결정적인 매개 역할을 했다. 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클래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사이 김순남, 윤이상과 같은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탄생하였고, 정경화, 백건우, 조성진과 같이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배출되었다.
우리 자신의 음악적 취향은 당연하게도 어릴 때부터 형성된다. 세 살 때부터 비틀즈를 들으면서 자란 이도 있고, 이미자와 나훈아를 듣고 자란 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바흐나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 슈베르트를 들으며 자란 이도 있다. 물론 풍물과 타령을 듣고 자란 이도 있다. 음향 녹음기술과 전송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는 자라면서 어릴 적 듣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색의 음악도 듣는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외래음악이고, 어떤 것이 전통음악인지 뚜렷한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 우리의 음악문화는 여러 요소가 다양하게 섞여 있다. 클래식 음악감상 행위는 별다른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이 일상화된 일이어서 더 이상 제국주의의 문화적 침투로 여겨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한낱 음악감상 행위에 불과한 일이 너무나 오랫동안 정치와 경제와 지역이라는 외부적 여건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 이제는 아무런 전제 없이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듣고 느낄 수 있는 때다. 물론 아직도 특정 음악, 예를 들면 레이디 가가라든가 마릴린 맨슨 또는 쇤베르크의 12음계와 무조음악 그리고 슈토크하우젠과 존 케이지 등의 아방가르드 음악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식민지 국민 또는 자기 계급 이탈자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채 고통 속에 음악을 듣는 때는 지났다. 어떤 음악이든 자유롭게 듣게 된 일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한 가지 더 쟁취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작곡과 연주의 민주주의이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zals, 1876~1973)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의 대부분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라고 성토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노동자 음악회를 열었고, 노동자 연주회 협회를 실현시켰다. 카잘스는 “저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동료 인류의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내게 주신 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 의무에 봉사하려 합니다. 음악은 언어와 정치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한편,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흐테르(Sviatoslav Richter, 1915~1997)는 “내가 연주를 하는 것은 청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합니다. 내가 내 연주에 만족하면, 청중 역시 만족합니다. 연주를 하는 동안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건 작품과 관련된 것이지 청중이나 성공을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내가 청중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관계는 작품을 통해서 맺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두 연주자의 말과 행동은 대조적이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똑같았다. 오로지 음악 안에서, 선율 안에서 인간의 만남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두 연주자 모두 이를 실현하였고, 이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은 특별한 감흥과 사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틀림없이 매우 오랫동안 우리 인류의 미적 정서를 고양시킬 것이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을 들으면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카잘스의 첼로는 논일로 거칠어진 할아버지의 두툼한 손바닥이다. 밭매기에 거칠어진 할머니의 생채기투성이 손바닥이다. 당신들의 손바닥으로 손주의 가려운 등을 쓸고, 아픈 배를 쓸어준다. 카잘스의 연주는 듣는 이들의 다사다난한 영혼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치유의 선율ㅇ다. 카탈루냐 민요를 연주한 〈새의 노래〉 는 스페인 내전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살아남은 이들의 울음-노래다. 리흐테르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1악장을 들으면, 안개 자욱한 새벽 숲을 서성거리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여명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고독한 실루엣이다.
이렇게 음악을 표현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카잘스의 말처럼 어느 누구에게 한정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음악에는 시와 노래가 있고, 슬픔과 기쁨이 있으며, 삶과 죽음, 사랑과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다가서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은 참되고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