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예술교육은 가능한가?
정창환(소이초등학교 교사)
2005년 문화예술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이 시행되어 왔다. 예산이 88억에서 1300억으로, 예술강사 1851명에서 6195명으로, 수혜자 수만 15,452,016명에 이른다(「문화예술교육진흥원 10년 백서」). 이제는 어디에서나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고 어디에서나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외연적으로 매우 폭넓은 대상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받고 있으며, 양적으로도 많은 예산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예술의 중요성이 더 많이 대두되고 있으며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 하지 못하는 인간다운 어떤 것을 예술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넓어진 지난 13년간 우리의 삶은 어떠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자살율 1위, 불반도, 헬조선, N포세대 등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으며, 사회적 계층간의 수직이동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문화는 사라지고 개인주의를 표방한 이기주의만 난무하는 현실이 되었다.
독특하게 나타나는 한국사회의 이러한 문제들을 개인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의 실패로 본다. 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잘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결을 위한 합리적 대화의 장들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 시스템들을 들여다보면 관이 주도하는 탑다운 방식의 사업들을 1회성으로 혹은 단기적으로 열어 많은 사람들이 빠른 시간 안에 문화예술교육을 맛보게 한다거나 또는, 대폭의 예산 지원을 통하여 많은 장소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삶 속에서 예술과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치품으로 예술을 향유하여 지적 호기심을 채운다거나, 예술은 내 삶과는 멀고 그냥 ‘바라보니 좋았더라’하는 식의 예술소비자만을 길러낸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본다면 어디가 적당할까?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학교에서부터 풀어가는 것이 어떤가 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가 변해야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학교 밖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보려고 제도를 정비하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 경쟁과 서열화, 지식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대부분인 학교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진보교육감들이 당선이 되고 학교의 이런 교육풍토를 바꾸려는 시도들을 해오고 있으며, 4차산업혁명과 미래 인재상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맞물리면서 학교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쯤에서 학교 교육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하브루타, 거꾸로 수업, 배움중심 수업, 이해중심 수업, 비주얼 씽킹 등 시대에 맞는 다양한 교육방법들이 시도되고 있고 그중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다. 그래서 각 교육청 별로 문화예술교육 거점학교, 청소년 오케스트라, 예술 중심의 방과후학교, 감성소리숲, 마을교육과정 이런 사업들을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에서 엄청나게 많은 예산들을 쏟아부어 가며 만들어 낸 이런 사업들은 정작 예산지원이 끊기거나 혹은 관심 있는 교장이나 교사가 떠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고 학교의 문화는 바꾸지 못한 채, 다시 예전의 교육으로 돌아가 버린다. 가끔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학교 사회의 이런 회귀성이 연어의 그것보다 더 강하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육청을 제외한 가장 큰 지원 단체는 문화예술교육 진흥원이다. 문화예술교육 진흥원의 사업에서 대표적인 것이 예술꽃 씨앗학교와 예술강사 지원사업이다. 학교 내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입증하는데 정말 많은 기여를 한 사업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이 같은 사업도 역시나 교육청 차원의 교육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르 중심적이거나,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사업적 성격이 강해서 학교 자체의 문화를 바꾼다거나 자체적인 예술교육 생태계 구축과 같은 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경우 예술강사와 학교간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서로를 오해하여 분란이 일어나거나 심한 경우 열정을 가진 예술강사들이 학교를 멀리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수업들을 들여다보면 교사와 강사 간의 협업을 위한 과정이 없어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과정과 예술강사가 가르치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오히려 예술강사의 수업시간이 교사들에게는 과도한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가 예술강사들에게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나 교사와의 협력수업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강사가 가르친 내용이 교육과정과 어긋날 경우 교사가 별도의 시간을 내서 교육과정의 내용들을 짚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꼭 성취해야만 하는 교육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강사와 교사가 미리 교육과정 안에서의 예술교육을 고민하고 다양한 교과들을 예술을 통하여, 예술을 위하여 즐겁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의문 속에서 헬로우아트랩 교강사랩 사업은 출발하였다. 기존의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협업을 통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아이들의 삶이 만나는 교육을 교사들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 함께 발전시키고 확산해 나가는 것. 그래서 효율성과 경쟁, 지식 암기 위주의 경직된 학교문화 자체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 그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는 헬로우아트랩 참가자들과 함께 다음의 문제들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1. 우리는 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하고 싶은가?
2. 기존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혹은 한계점은 무엇인가?
3. 교사 혹은 예술강사로서 느끼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발전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4.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나는가?
5.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없는가?
6.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정말 필요한가?
7. 우리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가?
토론문 | 문화예술은 모두가 누려야 할 자연스러운 일
김윤섭(화가, CB-arte 편집위원)
1. 우리는 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하고 싶은가?
수많은 예술강사와 교사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예술교육을 위해 일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육의 수혜자(소비자)가 모여 있는 가장 커다란 시장이 학교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차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미술관과 가수의 콘서트장 지방의 예술플랫폼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전부 거칠게 이야기해서 소비자들인 학생들을 초대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의 성인들은 예술을 즐길 시간이나 심적 여유, 인문학적인 분위기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예술 소비자라 부르기 어려운 실정인 것 같다.
2. 기존의 학교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혹은 한계점은 무엇인가?
3. 교사 혹은 예술강사로 느끼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발전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학교는 아이들의 구체적인 교육목표를 가지고 수업이 진행된다. 이러한 점이 문화예술과 교육의 잘못된 만남인 것 같다. 현대의 모든 예술들은 모더니즘 이래로 잉여와 무목적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왔다.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의 상징인 학교가 이러한 방치와 여백을 허용하기란 매우 힘든 실정인 것 같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개념미술에 관한 실습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가만히 생각하는 이유를 교사들은 적어서 보고해야 하며 수업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며 걸려오는 전화 항의를 받아야 하는 부담 같은 것이 있다. 아카데믹한 예술로 회귀하지 않는 한 그러한 교육적 효율과 현대의 예술은 매우 다르다.
앞서의 발제문(정창환의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학교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으나 담당 교장이나 교사가 떠나면 행정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것이 현 학교문화예술교육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인 것 같다. 학교문화예술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위해서 행정적인 일이 빠져서는 안되지만 수량적 성과와 예산 중심의 학교와 관의 행정이 새로운 학교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결을 같이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4.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나는가?
5.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없는가?
6.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정말 필요한가?
교사와 예술강사는 각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문성의 우열을 논하기보다는 각자의 역할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첫 번째로 교사와 강사의 입장과 환경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생활 안에서 교사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교사의 생각과 발언, 철학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학생들은 예술강사를 외부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교사를 외부인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없다. 내가 예술강사로 경험한 바로는 교사들의 마인드와 철학을 바탕으로 외부강사를 판단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얘기해요?” 같은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던 기억이다. 이러한 환경 차이는 교사와 예술강사의 역할을 구분 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구분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관과 개인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학교라는 기관을 대리로 일하는 교사들과 개인의 자격으로 활동하는 예술강사는 모든 문제에 학교라는 기관과 비용이라는 행정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교사와 예술강사 모두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관을 대리하는 교사의 눈치를 예술강사 쪽에서 더욱 받게 되는게 사실이다. 이러한 행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서로 더욱 명확하게 협업과 질 좋은 교육을 향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교사의 철학적 인문학적 베이스와 소양을 가지고 예술강사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 하는 시스템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 교사 각자의 전공과 교육과목이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과 인문학을 학생들에게 교육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또한 예술강사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체험할 행정적 제반사항들이 예술강사 혼자 부담해야 되는 행정처리로는 매우 힘든 실정인 것도 아쉬운 점으로 생각되어진다. 핼로우 아트랩에서 예술강사와 교사의 역할 분담과 상호의 입장을 확실하게 이해한다면 학교문화예술교육에 긍정적 시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7.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문화를 만들고 예술이라는 꽃을 피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리 일상의 도처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특히 강조하지 않아도 각 세대별로 또 학생들이나 아이들은 전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고 있다. 대중문화가 특히 나쁜 것도 아니며 고급과 저급의 문화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도전과 생성의 기쁨을 알려주고 창의성을 독려해 아이들에게 일상과 삶 그리고 인간에 관한 폭넓은 시야를 펼쳐주며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감수성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토론문 | 생각의 틀을 깨어 자유롭게 만드는 문화예술교육
박영호(공작플러스)
1. 우리는 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하고 싶은가?
기존의 획일화된 교육에 벗어나 새로운 시도와 생각을 가지려 한다. 새로운 시도는 아이들의 생각의 틀을 깨주고 자유롭게 만든다. 국영수에 치우친 학교시스템에서 그나마 자기만의 생각을 공유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예술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스스로가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우리는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단순히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 다니고 학교에서 즐거움을 찾게 하고 싶다.
2. 기존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혹은 한계점은 무엇인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낀다. 결과 위주의 교육방식은 아직도 변함이 없고 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 또한 결과를 위해 보고서를 쓰거나 전시를 준비해야 한다. 학교는 더욱더 전시와 공연 등을 원하고 있다. 필요성은 알지만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우리 강사들도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명령하기 시작한다. 거기서는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들로 나뉘게 된다. 점점 격차는 생기고 처음의 단합과 협동을 원하던 취지는 없어지고 결과 중심으로 진행하게 된다.
3. 교사 혹은 예술 강사로서 느끼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발전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결과중심주의와 빨리빨리 문화라고 생각한다. 결과중심주의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빨리 문화가 생긴 거라 생각한다. 이런 장애물들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과정도 결과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4. 교사와 예술 강사의 협업은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나는가?
교사의 예술 강사 사이는 협업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발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헬로우아트 랩처럼 사업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타협점을 찾았을 때 가능하다. 만약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할 경우 여러 장애물들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 사업비 문제, 학교 내부사정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이다. 특히 학교관계자분들의 생각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5. 교사와 예술 강사의 협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없는가?
서로의 타협점의 찾는 것에서 방해요소들이 존재할 것 같다. 학교의 분위기과 시스템도 있을 수 있고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학교의 태도도 중요할 것이다. 학교의 시스템의 문제에서는 제정상황도 중요하고, 안전규칙 사항과도 방해가 될 수 있다. 교사와 예술 강사는 좋은 수업, 즐거운 수업을 하는 것은 목표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에서 실행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에서 실행할 수 없는지를 찾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6. 교사와 예술 강사 협업은 정말 필요한가?
7. 우리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고 싶다. 정말 자유롭게 나를 예술로써 표현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신감과 창의력을 가지게 할 것이라 믿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만의 예술성이 있다면 삶의 질도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토론문 | 교육, 예술, 헬로우아트랩 :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짧은 단상
박혜명(덕성초등학교 교사)
나, 교육에 대한 고민이 충분했던 사람인가?
우선 그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겠다. 교사가 되는 것에도 별 뜻 없었다. 교사가 되고도 별다른 치열한 고민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교육철학까지 갈 것도 없이, 교육학에 기반한 아이들에 대한 고민 같은 것, 교육과정이라는 실체에 대한 고민 같은 것… 그런 것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아니어 왔다. 하루하루 학교 현장에서 버텨내기, 그래도 조금은 성의껏, 그리고 나름대로 멋있게 버텨내 보기.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뜨거운 성격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해 왔다. 그냥 그 정도.
그럼 예술에 대해서는…?
차라리 이쪽으로는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풍물을 좋아하니 전통 연희에 관심이 가고, 공연을 찾아다니고 기능을 익히고, 고민을 하고, 그러다보니 주변에 예술 하는 사람이 여럿 생기고, 대화를 하고, 그렇게 맺어진 인간관계와 대화들을 토대로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지금껏 그런 순환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해놓고 보니 이쪽이 내게 훨씬 자연스러운 것 맞다. 그러나 애초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해서 우리 음악에 발을 담그게 되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이쯤 되면 내가 왜 2018년 서른셋 현재, 학교 현장에서 예술교육을 고민하며 난데없이 충북문화재단엘 들락거리고 있게 되었는가 되짚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초등학교 5학년 박혜명은 어느 날 옆 반 선생님께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학예발표회 무대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내 역할은 부쇠.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걸 보면 다른 치배들은 모두 구성이 되었는데 그 자리만 비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접했던 사물놀이 장단들, 방과후 OHP 필름에 악보와 구음을 적어 우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 서로 몰랐던 다른 반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합을 맞추던 기억, 그리고 그들과 무대 위에서 맞췄던 호흡. 엄청난 전율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으로 기억되는 그 일이, 어쩌면 5년 후 고등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공연에 반해 사물놀이 동아리를 들게 만든 작은 단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다녔던 충북여고의 사물놀이 동아리 ‘모꼬지’는 학교 3대 동아리에 들 만큼 활동이 왕성했다. 학교 내지는 학급 이외에는 집단 생활을 접해볼 곳이 없었던 내게 동아리는 그야말로 처음 접해보는 집단, 아니 ‘조직’에 가까웠다. 그 안에서 선배들로부터 엄격하게 배운 장단들, 그리고 동기들과 합을 맞추기 위해 점심식사도 하지 못하고 연습했던 시간들, 방학도 없이 학교에 모여 함께 뛰고 진풀이를 연습했던 여름, 다른 학교들과 연합하여 이루어진 여름 합숙과 그 안에서의 설렘, 그 모든 것들을 담아 학교 축제 무대에 섰을 때 객석에서 전해오던 뜨겁던 반응, 그리고 그보다 뜨거웠던 무대 위 우리끼리의 호흡, 그것이 주는 전율. 아아, 그 예민하고 말랑말랑했던 나이에 그 동아리 경험은 나를 숱하게 전율하게 했다. 아마 그 시기에 나의 성격을 비롯한 자아의 상당 부분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대학교 풍물동아리로 이어진다. 청주교육대학교 국악연구회. 그리고 교직에 나온 첫해, 나는 다시 충북교사국악동호회 소리마루에 발을 담갔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끊임없이 좇고 거기에서 에너지와 희열을 얻어 삶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은 더러 공감할 것인데,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동기들과 합을 맞추며 맛보았던 전율은 열여섯 그날부터 서른셋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오고 있다. 연습하고, 공연하고, 합숙하고, 술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고, 숱한 공연을 보러 다니고, 그 모든 경험이 내겐 모두 다른 형태와 질감의 전율들이었다. (그 에너지를 오롯이 학교에 쏟았다면 나는 흔히 말하는 ‘참교사’의 범주에 들었을까.)
2013년부터는 학교에서 사물놀이부를 맡아 지도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다. 풍물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라서,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과정은 분명 진이 빠질 거라는 내 나름의 이유로, 사물놀이부 따위는(!) 계속해서 피해 다녔다. 그러나 학교를 옮기면서, 그간 꽤 명성을 떨쳤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과거의 영화만이 전설처럼 남아 당시에는 보잘 것 없어진 덕성초 사물놀이부를, 피할 수 없어 맡게 되었다. 사물놀이부를 다시 살려보라는 교장선생님의 지령 아래 지도교사이자 강사를 겸하면서 숱하게 고민했던 1년이 떠오른다. 사물놀이가 아니라 그 뿌리를, 그 원형을 알려주고 싶어서 했던 고민이었다. 대회 1등의 영광만 좇는 아이들이 아니라 풍물이 갖는 진짜 즐거움을 아이들이 알아버리게 만들고 싶어서 했던 고민이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하는 바를 이루었던가?
글쎄. 스러져가던 사물놀이부가 번듯하게 바로 세워져 연습 체계를 갖추고, 자발적인 지원을 받아 단원 수를 충분히 늘렸다. 아이들의 연습 의지를 끌어내어 전국대회 대상도 탔고, 학교 안팎으로 공연도 다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진짜가 아니다. 졸업을 앞둔 사물놀이부 아이들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동아리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요청해왔을 때, 2년간의 노력이 처음의 목표에서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구나 싶어 감격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우리 음악을 즐거워하고 있었고, 함께하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고, 나를 신뢰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2015년 4월, 충북청소년풍물패 ‘한빛’을 소리마루 아래에 창단했다. 그 아이들이, 이제 모두 고등학생이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 풍물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이란 좋은 것들은 모두 주어야지 하고 열망했던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볼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왔는데, 어느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 무심결에 아이들을 보니 모두가 내 과거였다. 같이 풍물을 하면서 친해지고, 싸우기도 하고, 땀 흘리며 연습하고, 기능이 늘지 않아 시무룩하기도 하고, 스스로 잘했다고 의기양양하기도 하고, 합숙 때는 같이 밥도 짓고,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덜 깨끗한 잠자리도 불평하지 않고 나름대로 만족할 줄 알고, 힘들어하는 친구 어깨에 말없이 손을 갖다 댈 줄도 알고, 그리고 이제쯤에는 서로 누가 누굴 좋아하느니 하면서 제법 썸도 타고 있고. 딱, 내가 고등학교 사물놀이부 하면서 겪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겪으며 잘 자라고 있다. 아아, 예쁜 것들. (그럼, 이 아이들이 내 과거라면, 나는 이 아이들의 미래일까. 이건 글쎄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을 좇아 뜨겁게 좌충우돌해온 시간을 통해 풍물에 대한 관심은 우리 음악 전반으로 확대되었고, 이토록 멋진 음악이 왜 정작 이 땅에서 냉대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우리 음악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채우고자 하였다. 그래서 지원한 것이 한국교원대학교 초등음악교육과 파견. 파견을 마치고 돌아와 그간의 교수님의 가르침과 우리 음악에 대해 나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책임감 내지는 사명감으로 신청한 것이 헬로우아트랩이다. 과정이 구구절절 길었지만 실제로, 이 자리에 앉아있기까지, 이 모든 일련의 경험들이 하나의 길로 꿰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수업연구 모임 같은 것 정말 좋아하지 않는 내가, 교사와 예술가가 함께 만드는 예술수업 프로젝트에 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얘기로 돌아와서.
먼저, 그간 수업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빠져 학교에 좀 더 큰 에너지를 쏟지 않은 나의 죄를 스스로 사해보려고. 주된 이유는 아니지만 꽤 큰 이유라서 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예술 방면의 수업 고민이라면, 비교적 덜 스트레스 받고, 더러는 재미있어하면서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둘째는, 아이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예술적 체험을 권하고 싶은 진심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풍물과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그리고 우리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내가 느끼는 건강한 만족감이 곧 증거라고, 내가 곧 증인이라고 목청껏 말해주고 싶으니까. 내 생애 평생에 걸쳐 갈고 닦아 수련처럼 삼고 벗 삼아 함께 가고 싶은 것을 나는 이미 찾았다. 우리 음악. 그리고 이 선택이, 풍물이, 국악이 내게 주고 있는 수많은 기회들과 흐드러지는 문화적 경험은 분명 내 삶의 윤활유가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한빛 아이들을 보면, 가끔은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제자가 아니라 이제쯤에는 인생 후배들 같고, 동료들 같기도 하다.)
애초에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목숨 걸고 하는 편이고. 이번 프로젝트는 내게 여러 모로 성가시다. 고민할 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 고려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그렇지만 아마, 완주할 예정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좇으며 얻은 수 많은 좋은 것들을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주어야 마땅하다고 느꼈으니까,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언제쯤인가부터 꽤 흥미로우니까.
토론문 | ‘예술적인 교육활동’을 고민하며 실행한다
성정원(작업실 짜장)
나는 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가?
작가로서 나는 왜 교육활동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나는 현재 작가로서의 삶이 1순위의 중요도다. 그런데 왜 나는 작가로서 교육활동에 관심이 있을까? 미술교육을 전공한 점이 작용을 한 것일까? 작가로서는 아마도 교육적 활동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통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예술의 순수한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작업실 짜장’의 문을 열었고, 미술을 중심으로 예술과 예술교육, 예술문화교류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을 하려 한다.
(여기서 잠깐. ‘짜장’하면 부담 없이 생각나고 배달시킬 수도 있는 대중적인 짜장면이 떠오른다. 맞다. 짜짱면의 탄생은 한국과 중국의 음식문화가 혼합되어 탄생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짜장은 순수한 우리말로 ‘정말로’, ‘말 그대로 틀림없이’ 등의 의미가 있다. 이 두 가지 의미 모두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는 듯하여 ‘작업실 짜장’을 걸게 되었다.)
문화예술교육활동에 관심을 두는 또 다른 이유는 아이스너(Elliot W. Eisner)의 “교육 활동에서 예술적인 경험이 가능하고, 예술 활동에서 교육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에 대한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개인 작업에 비해 소모되는 것이 너무나 많아 지치기도 하지만, '예술'을 기반으로 '예술적인 교육활동'을 고민하고 실행하고 그 경험을 의식과 몸으로 직접 느껴 보고자 과감히(막무가내)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확장성에 대한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3년 전에 일본 요코하마시의 고가네초 예술촌(Koganecho Area Management Center)에서 운영하는 고가네초 베이스를 답사한 적이 있다. 지역 어린이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하는 공간으로 약 ‘2평’ 정도 되는 공간에 각종 재료와 공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말이 2평이지 어린이들은 마치 200평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듯했다.
학교와 학원을 의무감에 수동적으로 오가는 것이 아닌, 마을에 마련된 미술 공간을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어린이는 마을과 예술에 대한 애착과 견해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으며, 문화예술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공간은 어린이들을 위한 지역 공동체의 미술 공간이지만 결국 자신의 삶에서 예술적 감성을 아우르며 표출할 수 있는 씨앗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작품 제작과 이론 탐구를 통해 조형과 예술의 본질적인 측면을 지속적으로 통찰해 보게 한다. 이는 개인적인 꾸준한 작품 활동과도 연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예술가가 되지 않으면, 예술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진가인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의 말은 미술교육활동을 하면서도 작가의 길을 놓지 않게 만든다. 미술(예술)을 가르치는 교육자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왜 학교와 협업하려 하는가?
체계적인 교육활동을 구성하여 교육하는 장소는 참 많다. 예술만 하더라도 미술관, 공연장, 학교, 각종 센터(주민센터에서부터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등등. 그리고 누군가 개인적(그리고 즉흥적인 상황에서)으로 구성되어 진행되는 간단하게 짧은 시간 동안에 발생되는 교육적 상황은 수도 없이 많다.
학교의 교육과정 안에서의 ‘미술교과’는 ‘미술’과는 다를 수도 있다. 이는 과거에 비해서는 결과 중심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경험을 위한 과정에 충실한 미술활동을 추구할 것인가와, 행동의 변화(학습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미술활동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고민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창작과정을 포함한 미술은 다양하고 다층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여, 자기주도적인 문제해결과정을 경험하고, 긴장감, 경계심 등을 허물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학습된 미술활동으로 행동의 변화’를 위한 ‘미술교과활동’을 원하는 많은 이들에 대항하여 과연 ‘의미 있는 경험 그 자체’를 위한 미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두 관점 모두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작가로서 학교와 협업하여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그래도 과정과 경험 중심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감히 학교와 협업하려고 한다.
학교 미술교사와 작가의 미술교육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교 미술교사는 학생지도, 평가 등의 과정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창작·감상 과정 그 자체의 몰입에 집중하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이 부분을 작가들이 진행하는 미술교육을 통해 ‘좀 더 진지하게 작가처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또한 장르 융합이 많은 미술(예술)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열린 마음을 지닌 교사와 함께 하는 학교와의 협업은 작가들의 ‘의미 있는 미술 활동’에 대한 모색을 바탕으로, 교사의 ‘의미 있는 미술교과 활동’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토론문 |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예술교육은 가능한가?
신수정(공작플러스)
1. 우리는 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하고 싶은가?
좋은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므로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만 ‘그럼 좋은 문화 에술교육은 뭐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저의 생각을 조금 꺼내봅니다.
현 공예분야 학교예술강사이며 중학생 아들 두 명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좋은 문화예술교육이란, 첫째, 국영수 교과 중심의 주입식 지식교육의 양을 축소하고 예술교육(음악, 미술, 연극, 국악, 기타 등), 체육교과의 비중을 늘려야 하고. 음악 미술 연극, 국악 등의 내용과 형식 역시도 변화하는 문화예술 정책 방향에 걸맞게 음악 문화교육, 표현문화 교육 영상매체 교육 등으로 변화하여야 하며, 교육과정과 평가의 틀을 개편하고 창의적 문화 영향에 우선으로 초점을 이동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한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문화적 장으로 변화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평가 제도가 개편되는 교육형태가 좋은 문화예술교육이라 생각되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하여 변화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2. 기존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혹은 한계점은 무엇인가?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학교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저의 경험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계자들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이것은 정책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본다면 말입니다.
입시교육위주 지식정보전달이라는 낡은 틀에 매달려 있어 지금 우리의 교육은 학교붕괴, 교실붕괴를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가 아이들의 판단력과 창의성 상상력과 관찰력에 장애를 주고 있어 교육정책에 시급한 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3. 교사 혹은 예술강사로서 느끼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발전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너무 과한 표현이 될까 조심스럽지만 세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관계자들의 생각과 태도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봅니다.
4.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나는가?
예술강사가 학교에 필요한 무엇인가에 재능기부를 하게 될 때?
5.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없는가?
위의 3번 질문과 같은 생각입니다.
6.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정말 필요한가?
교육대상자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하며 예술과 교육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이 공통분모이기 때문에 학습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 교·강사의 협업은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7. 우리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가?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가도록 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아이들과 어른인 우리들 모두는 다양한 스마트 미디어에 집약된 기술들로 인해 정보를 얻는 방식, 나를 드러내는 방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뉴미디어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잠들어 있는 손의 감각을 깨워 만지고 움직이고 손으로 생각하면서 “Do It yourself”를 실천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토론문 | 일상의 예술화 : 학교 안팎에서 어디서나 잘 놀기
이선희(작업실 짜장)
‘문화예술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삶의 공간과 생활 속에서 미적, 창의적, 예술역량을 발휘하여 자기이해와 사회적 소통, 그리고 문화적 성장을 기르는 데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내가 작업을 하고, 미술을 가르치고, 현재 ‘헬로우아트랩’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흥미로워서’이다. 예술로 삶을 이야기하고, 예술로 수학, 국어와 같은 교과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가! 우리의 삶을 복합적으로 아름답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술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교육 이전에, 학교와 학생과 문화와 사회, 교육을 예술로 연결하는 매개자가 되고 싶다. 삶과 놀이를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
1. 우리는 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하고 싶은가?
학생들에게 학교는 일상이고, 삶의 전부이고, 학교 그 자체가 사회이다. 예술적 경험은 삶의 과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내가 경험했던 문화예술교육은 경험 위주의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많았고, 사고를 하기 이전에 모든 활동들이 끝나버린다. 문화예술교육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문화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 키워드이고, 예술은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좋은 수업은 흥미로우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를 이해하게 도와주리라 생각된다. 어린 친구들이 더 큰 사회로 나아가기 이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업을 하고 싶다.
2. 기존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혹은 한계점은 무엇인가?
발제문에서 언급되어 있다시피 효용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진행과 경험 위주의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학습자를 이해하기보다 교육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사고를 보편화시킨다. 학교 내부의 문화적 혜택이 특별활동이나, 동아리, 방과후학교만으로 멈춰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고학년들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이용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복합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와주고, 자기표현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3. 교사 혹은 예술강사로서 느끼는 학교문화예술교육 발전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문화예술교육의 순기능으로 문화적 소양과 정서를 기르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예술적 소양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보편화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학급/학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수업들은 학생들의 수준을 평이하게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보편적 교육은 가능하지만, 소질이 있는 학생들의 예술적 감각을 끌어내기에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
두 번째로 촉박한 시간과 결과물에 치중하는 사고가 역시 큰 장애물이라 생각된다. 단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계절이 필요한데, 두 시간 남짓의 미술 수업시간 동안 나무를 보고 그린다고, 학습자가 나무/단풍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4계절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결과 보고집, 전시회 등을 위한 결과 중심의 수업보다는 과정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되길 바란다.
4.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나는가?
모든 교과목과 예술수업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교육과정에 기반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예술강사는 예술적 성취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필요성이 요구될 때 제대로 된 협업이 가능할 것이다. 협업의 범위나 주체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충분한 대화가 있어야 적은 시행착오로 협업이 잘 진행되리라 생각된다.
5. 교사와 예술 강사의 협업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없는가?
4주 혹은 5주 이내의 수업을 계획하면서,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뻗어 나갈 수 있는 갈래들을 정리해야 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한 달, 한 학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6. 교사와 예술강사의 협업은 정말 필요한가?
협업의 크기가 크진 않더라고,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예술교육이 엘리트중심의 지식전달 교육이었다면,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은 주관적 표현과 행위를 중시하며 진행하고 있다. 교사와 예술강사가 ‘예술을 통해서, 예술을 위하여 즐겁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학습자도 문화예술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7. 우리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가?
작업을 할 때, 주제의식을 갖고, 창작물을 만들다 보면 항상 뜻하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들은 삶의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이겨내는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예술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고, 예술을 통한 소통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자기의 생각을 글과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리,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미래를 위한 복합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창의적 시각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학교는 서로 다른 색깔과 무늬를 가진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얽혀 있었으면 좋겠다.
토론문 | 문화예술교육의 정의 그리고 그 주체
이현석(CB-arte 편집위원, 소셜코디 대표)
교육이란, 좁은 의미의 사전적 정의로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다. 특정 단어에 교육이란 단어가 붙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보기 시작한다. 지식교육, 기술교육, 문화교육, 예술교육, 창의교육 등 모든 분야에 교육이 붙으면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지식교육이나 기능교육의 형태가 되면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전수'를 하면 된다. 배우고 익혀 알게 하고, 또 능숙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문화교육, 예술교육, 창의교육 등과 같은 형태의 교육은 배워서 익히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히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만나 무엇인가를 ‘전수’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1998년 제정되고 2000년에 시행된 평생교육법에 의해 평생교육이란 개념이 제도로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각 대학과 교육기관에는 평생교육원이 설립되고, 많은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성인 평생교육의 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5년 문화예술진흥법과 연계된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되어 2006년 시행되었다.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펼쳐진 것과 같이 문화예술교육은 또 한 번 교육계의 새로운 이슈이자, 과제가 되었다.
12년이 지난 2018년 문화예술교육은 사회 전반에 펼쳐져 있다. 학교,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듣고 이야기되는 소재가 되었다. 창의성, 적극성, 다양성 등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야기되며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만큼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개념이다.
‘문화'의 사전적 정의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이 아닐까?
문화예술이란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고,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다. 문화예술이란 예술활동이 있는 문화정도로 읽힌다. 그렇다면 학교의 문화예술교육이란 학교 안에서 예술활동이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교육활동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이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예술활동이 진행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예술과 친해지고, 생활 속 예술이 몸에 배어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생활양식으로써의 문화로 정착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활동의 결과는 연극, 음악, 사진, 문학작품, 그림, 조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그중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은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은 결과물이 아닌 그 과정에 좀 더 집중되어야 한다. 교사 혹은 예술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예술활동’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예술활동을 하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문화를 즐기고 만들어내는 세대로 탈바꿈한다면 ‘문화예술교육'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교육자로서는 교사와 예술강사일 것이며, 피교육자로서 학생이다. 예술활동이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그 문화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레 발현되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당연히 교육자인 교사와 예술강사의 역량이 필연적이다. 현재는 교사와 예술강사의 역할과 협업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시스템의 문제일 것이다. 예술강사의 육성과 안정적 교육활동을 위한 신분보장, 급여와 처우 개선 등 다양한 해결의 지점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학교교사 역시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고, 즐겁게 학생들과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과연 교사와 예술강사들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결국 시스템, 제도의 개선 없이는 장기적인 관점으로의 문화예술교육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란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바뀌어 간다. 예술활동을 학교에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한 세대들이 자라나 사회 곳곳에서 예술이 있는 문화활동을 펼쳐 나갈 때 비로소 문화예술교육의 효과가 빛을 발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매년 고정된 예산, 아이들과 정확히 함께 하는 교육시수만 인정하는 예술강사에 대한 급여시스템과 처우, 교사와 예술강사가 협업하여 지역별로 학교별로 보편적이면서 특색이 함께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집담회가 다음과 같은 질문의 가감없이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제도적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2.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가?
3. 문화예술교육의 단기적 성과, 장기적 성과는 어떠해야 하는가?
토론문 | 문화예술교육은 삶의 목적
조기영(충주교육지원청 장학사)
올해의 폭염과 비교되는 1994년의 여름, 우주를 삼킬 꿈을 꿔도 모자랄 시기에 참고서와 문제풀이만 반복하던 그 여름. 죽은 시인의 사회 존 키팅의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뭘 딱히 즐길 거리도 없었을뿐더러 영화처럼 “캡틴 오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에 올려줄 선생님도 없었고, 인생과 현재를 즐길 용기마저 없었기에 말 그대로 영화 대사로 남았던 한마디.
그런데 내 나이가 존 키팅의 나이쯤 되었을 때 심장을 잡고 흔드는 영화 속 대사는 다른 것이었다. 교실에서 시의 이해를 가르치며 이런 이론은 쓰레기라며 찢어버리라고 한 후 학생들에게 하는 대사.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삶의 목적을 영화 대사로 간단히 정리해 주었다. ‘그래 예술이 삶의 목적이지. 시를 쓰는 것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 곧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삶을 유지하는 수단을 가르치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인간들에게 적어도 삶의 목적 정도는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학교의 책무와 책임 교사로서의 사명이 아닐까.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독특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카고컬트(cargo cult), 화물신앙. 세계 2차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섬에 미군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하늘에서 미군 비행기가 날아와 착륙하면 비행기에서 온갖 신기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군이 떠나고 더 이상 비행기는 내려오지 않았고 원주민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 후로 대나무로 모형비행기와 관제탑을 만들고 제사를 지낸다. 간절히 바라면 다시 예전처럼 커다란 새가 내려와 선물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바람이다. 그 간절함이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이것이 원주민들만의 이야기일까? 지금, 여기,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학교 교육이 엄청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을 목적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저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대나무로 빨리 견고하고 커다란 비행기를 만든다고 하늘에서 신의 축복이 내려오지 않듯이 수학문제를 제한 시간에 남들보다 빨리 완벽하기 푼다고 나아질 것은 크게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실패가 없는 교육을 예술교육이라고 말하고 창의성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문화예술이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고 말한다.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삶의 목적을 인식시키는 교육이다.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들에게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해주는 교육,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지신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신동엽,「산문시 1」 부분)
막장에서 일하고 나오는 광부들의 뒷주머니마다 꽂힌 시집, 누구나가 악기 하나는 멋지지는 않더라고 소박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회, 예술이 삶의 목적으로, 그래서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