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거주한다면 한 번쯤은 들려보았을 ‘성안길’은 평일과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혹자들은 최근 새로운 상권이 들어와 예전 같은 모습을 찾기 힘들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운 건물과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가득한 성안길은 명실상부 청주의 중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이곳에서 도보로 반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서는 녹슨 간판과 빈집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온도차이가 극명하다.
이 동네의 분위기는 야경이 아름다운 수동부터 시작해서 중앙동, 문화동, 대성동 그리고 탑동으로 이어진다. SK하이닉스를 위시한 산업단지가 있는 ‘회색도시’ 서청주와 달리 도청 뒤쪽의 동청주는 일본 고베(神戶)의 골목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청주 향교로 유명한 이 근방은 개발이 금지된 구역을 포함해 문이 굳게 잠긴 학교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문화기획자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 상점들 또한 익숙한 브랜드나 거대한 가게들이 아니라 소소한 인테리어의 미니멀(minimal)한 성격을 띠고 있다.
향교를 등지고 내려가다 보면 오늘의 무대 ‘충북문화관’이 등장한다. 이전에 과제를 위해 괴산군의 ‘포석 조명희 문학관’을 들렸다가 추가적인 자료를 위해 들렸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충북문화관 ‘문화의 집’에는 충북 각 시군구를 대표하는 12인의 문인들의 기록이 있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는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문화재인지라 물도 마실 수 없다고 한다. 그 뒤로는 여러 전시와 행사가 열리는 ‘숲속갤러리’가, 야외는 공연장과 더불어 몇 가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최근 건강한 문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목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하고 있다. 선배 문화기획자는 ‘직지코리아’ 같은 대형 행사를 없애거나 축소하여 그 비용만큼을 동네기획자들에게 지원해주자고 한다. 일시적인 문화가 아닌 지속적인 문화를 향유하려는 것이다. 삼겹살 골목의 한 가게 사장님은 가까운 동네인 단양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해가 중천임에도 재료가 부족해 문을 닫는 가게들이 시장에 즐비하다는 이유다. 그리고 다시 삼겹살 골목에 대해 걱정을 시작하셨다. 세계적인 자랑거리 ‘직지’의 고장이자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삼겹살’이 유명하고, 국제공항까지 보유한 청주지만 직관적으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군대 후임은 자꾸 충주냐고 물어본다. 몇 대 때렸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공감을 한다. 한숨을 내쉰다. 참 어려운 동네다.
자, 지금까지 오늘의 주인공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은 내 경험과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오늘의 주인공인 ‘2018 충북문화예술교육축제 〈소행성〉’을 칭찬해주기 위해서다. 충북지역의 많은 문화 관계자들이 끊임없는 고민을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소행성〉은 그런 행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몇 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 전시 주제와 공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기획을 했다는 점이 한눈에 보인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행사 팸플릿이 없다면 하나 구해주고 싶을 정도다.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취재를 부탁받으며 행사에 대한 평가도 원하셨기에 몰래 먹는 사탕처럼 아껴두었다가 조금씩 내놓으려 한다.
〈소행성〉은 2018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이루어졌다. 특히 27일 토요일에는 체험부스와 공연이 열렸다. 운이 좋게도 27일에 충북문화관을 방문할 수 있었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 날의 현장을 스케치하려 한다. 방문객은 그 날의 추억을 되살리고 그렇지 않다면 다음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18년 10월 27일이다. 몇 주 째 에어컨과 히터를 번갈아가며 틀어야 하는 날씨. 반복되는 중노동에 내 차도 드디어 화가 났는지 소음이 심해지고 있다. 그래도 본성은 착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혼자 올 뻔했으나, 내가 직접 전시에 참여했다는 설득 끝에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할 수 있었다. 데이트도 하고 일도 하고 일석이조인 셈.
충북문화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인사와 함께 팔찌를 채워주었다. 입장 티켓 대신 팔찌는 항상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축제 분위기도 내고 집에 가서 기념도 할 수 있다. 마치 데이트도 하고 일도 하는 효율적인 친구 같군.
이전에도 충북문화관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 궁금했는데 바로 주차장에서 문화관으로 올라가는 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다. 그리고 그 길 때문에 행사 시간에 지각한 적도 있다. 어쨌든, 나의 ‘힘겨운 길’은 예쁜 장식들과 함께 ‘은하수길’이라는 이름의 포토존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모두 예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힘들다는 감정을 느낄 시간도 없이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힘겨운 길’을 다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이제 ‘힘겨운 길’은 제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아요. 기분이 좋다.
입장 팔찌에 체험 도장을 3개 받으면 기념수첩을 준다는 말에 눈에 불을 켜고 체험이 가능한 부스를 찾으려 했다. 가장 먼저 보였던 체험 부스는 ‘공작플러스’가 운영하는 정크아트였다.
“선생님, 아무거나 만드는 건가요?” 가벼운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제법 무거웠다. “산업폐기물을 이용해 물고기 부적을 만들고 있어요. 물고기는 예전부터 화를 막아주고 행운을 불러들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좋은 뜻을 아이들도 알아차렸 는지 빈자리가 없이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라온뜰’에서 운영하는 스탬프아트 부스가 있었다.
“선생님, 저도 체험할 수 있나요?”
“죄송해요. 지금은 쉬는 시간입니다. 3시부터 운영합니다.”
속이 타들어갔다. 내 수첩!
숲속갤러리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여러 개의 체험 부스가 연달아 있었다. 시장문화예술공동체 ‘있소’에서 운영하는 목공체험부터, ‘문예두럭’의 스트링아트, ‘복합문화공간 1377’의 한지 나비 뜨기, ‘모퉁이돌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팽이 만들기, 마지막으로 ‘단우회’에서 운영하는 예쁜 빛깔의 단청까지.
먼저 목공체험을 시작했다. 동그란 나무판에 네임펜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불이 나오는 펜으로 밑그림에 덧칠하고 줄을 걸어 목걸이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하여 담당 선생님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무가 문신을 하네요?” 대답을 해주지는 않으셨다. 편의를 위해 밑그림이 미리 그려져 있는 것도 있었다. 우리는 빈 나무를 선택하여 ‘소행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목걸이 만들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받은 체험 완료 도장 1개. 모든 체험을 하고 싶었으나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이 친구들에 비해 우리는 꽤나 컸다.
숲속 갤러리의 1층에서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 ‘학교예술강사’의 기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화 기획’을 흉내 낸 지 어언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많은 걸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1층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자만에 가까웠던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생각지도 못한 주제들이 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또, 이런 프로그램의 대상은 아이들일 줄만 알았는데 ‘대상’에 ‘아동과 노인을 포함한 일반시민’이라고 적힌 게 기억에 남았다. 하긴, 예술을 주고받고 향유하는 데 감히 어떠한 제한이 존재할 수 있을까.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헬로우 아트랩’에 참여한 단체별로 전시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운이 좋게도 노펜스(NOFFENS)의 이름으로 아트랩에 참여할 수 있었고, 며칠 전에 같은 장소에서 결과공유회를 진행했다. 덕분에 다른 부분에 비해 약간이나마 자신 있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휴.
‘헬로우 아트랩’은 크게 ‘교․강사 LAB’과 ‘신규․거점 LAB’으로 이루어 진행되었다. 먼저, ‘교․강사 LAB’은 실제 학교와 예술 강사가 함께 교육과정을 예술로써 풀어내는 과정이다. 스물여섯인 내가 ‘나 때는….’이라고 하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의 수혜자로 등장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층의 안쪽에 직접 제작한 동영상과 현수막, 나무판과 롤링페이퍼가 전시되었다.
바깥으로 나오면 ‘신규․거점 LAB’에 참여한 단체들의 결과물이 보인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자력으로 해내야 했던 각각의 팀은 우려와 달리 뚜렷한 색으로 개성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휴식공간부터 시각예술, 음원, 엽서와 잡지 등의 굿즈(goods), 심지어 음식까지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는 비슷한 계열의 단체가 참여자들에게 서로의 프로그램을 추천해주고, 홍보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경쟁사회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답을 찾고자 했던 충북, 그리고 청주의 직관적인 이미지는 이런 정감 있는 이야기가 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을 나오니 숨어있는 체험부스가 있었다. ‘극단 꼭두광대’가 운영하는 미니탈액자 만들기였다. 이 곳 역시 추가적인 체험이 불가능할 정도로 체험인원이 많았다.
숲속갤러리에서 나오니 귀여운 아이들이 제각각의 음정으로 부르는 노래와 함께 율동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닦으려 할 때쯤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한마디 하셨다. “이제 진짜 공연할게요~” 리허설이었나보다.
무대의 맞은편으로는 충북문화재단의 선생님들이 닭강정과 팝콘을 나눠주고 계셨다. 양 손 가득 음식을 받은 채 그냥 가기가 미안했는지 살짝 물어보았다. “무료인가요?” 웃음으로 답해주셨다. 정말 좋은 축제다.
돌아가는 길, ‘문화의 집’ 옆으로는 ‘공수표’가 운영하는 우리동네 대지미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무지개와 작별의 인사를 했다.
이렇게 〈소행성〉의 모든 곳을 둘러보았다. 1년간 이루어진 충북지역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집합체를 감히 평가할 수 없으나 아쉬운 점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전시에 있었다. 체험과 공연이 일정 중 단 하루만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주목받아야 한다는 점에 이견은 없지만, 1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공간을 방문객들이 팸플릿 같은 한정된 정보로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시는 이야기와 함께 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된다. 참여 단체가 직접 설명했던 결과공유회가 좋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완성도 있는 기획력과 녹아든 이야기들은 방문객들을 감동케 하기에 충분했다. 특별하지 않은 청주를 특별하게 만드는 법은 이러한 움직임이 아닐까.
전시를 둘러보고, 몇 가지 체험을 하고 충북문화관의 문을 나선 순간 양 손이 가득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은 거짓말. 물론, 다른 곳에서도 무언가 주기는 준다. 그래도, 경험해 본 결과, 청주 사람들은 특히 많이 준다. 그 이유가 ‘무지(無知)’가 아닌 ‘정(情)’에서 비롯된 것이길 바라며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