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한 장면 (웹진 11월호)
벽초 홍명희의『임꺽정 1』(봉단편)
사위 나리가 서울로 떠나게 될 날도 가깝고 하니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어 조석을 같이 먹자고 주장하여 윗방이 조석 먹는 방이 되었는데, 구미 잃은 봉단이가 험한 밥 먹는 것을 사위 나리가 딱하게 여기어서 자기의 입쌀밥을 주고 싶으나 여러 사람 보는 곳에서 유난스러워서 주삼의 아내를 보고
“혼자서 좋은 밥을 먹자니 첫째 염치가 없어. 이 밥 좀 나눠들 자시지.”
하고 위만 헐다가 만 밥그릇을 내어주니 주삼의 아내가
“고만두고 더 잡수시오.”
하고 권하다가 사위 나리가 정히 고만 먹겠다고 하니까
“네가 먹어라.”
하고 봉단을 내주었다.
사위 나리 맘에는 봉단이가
“녜.”
하고 받아먹었으면 좋겠는데 봉단이는 남의 맘도 모르고
“아버지 잡수세요.”
하고 주삼을 주고 주삼은
“나는 조밥이 좋아. 당신 자시오.”
하고 아내를 주니 주삼의 아내는
“아재 자시오.”
하고 주팔을 주고 또 주팔은
“나도 조밥이 좋아. 너 먹어라.”
하고 돌이를 주었다.
입쌀밥 담은 밥그릇이 한차례 식구 앞에 조리를 돌아 돌이에게 간 뒤에 돌이가
“다 싫다면 내나 먹지.”
하고 처치하게 되니 사위 나리의 소료와는 틀리었다.
(『임꺽정』 1권 174~175쪽)
연산군은 쫓겨나 신원 회복된 ‘김서방’이 제대로 ‘사위 나리’가 된 뒤, 봉단이네 식구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아침밥을 먹는 대목이다. 우선 사위 나리에 대한 장인과 장모의 처우가 달라져 있다. 양반으로 밝혀진 ‘사위 나리’ 김서방(이장곤)은 윗방에서 혼자 ‘쌀밥’을 먹고, 나머지는 백정 신분인 터라 아랫간에서 ‘조밥’을 먹는다. 하지만 이장곤은 부부임에도 서로 신분이 갈려 ‘조밥’을 먹는 아내 봉단이에게 ‘쌀밥’을 먹일 요량이지만 멋쩍어서 장모에게 혼자 먹자니 염치없다며 밥을 내놓는다.
그 밥이 돌고 돈다. 장모는 딸 봉단이에게 권하고, 봉단이는 아버지에게 권하고, 아버지 주삼이는 다시 아내에게 권하고, 아내는 시동생 주팔이에게 권하고, 주팔이는 형수의 조카 돌이에게 권한다. 돌이 빼고 다 같은 마음이다. ‘좋은 밥’을 자신이 취하지 않고, 자신에게 허물없는 이에게 쌀밥을 먹으라 권하는 것이다. 주삼의 아내이자 나리의 장모인 봉단 어머니는 아마 자신이 먹자니 역시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아끼는 딸에게, 지아비에게, 시동생에게 밥을 건넨다. 누가 먼저 나서서 ‘내가 먹겠노라’ 하더라도 아마 그걸 두고 뭐라 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예의 거침없는 돌이가 ‘그럼 내가 먹지’ 해서 그 밥을 먹는 것을 그 누구 나무라는 이 없다.
늘 험한 밥을 먹어야 하는 백정의 처지여서 좋은 밥 먹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할 것이다. 오래 굶다가 기름진 것을 보고 마구 입에 넣다가는 배탈도 나지 않던가. 그래서 이 대목은 오래 가난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공감될 터이고, 한편 쓸쓸하면서도 정겹고, 한편 눈물겨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것이다. 작가의 감정이 치우쳐 서술되는 바 없고, 서로 밥을 건네고 밥을 또 돌리는 이들의 대화나 행위에도 유별남이 없다. 그저 그러한 장면이고 스쳐 지나갈 만도 한데, 이 소소한 일화가 인상이 짙고 오래도록 여운이 크다. ‘밥’이란 게 인간사에서 첫째갈 만하게 소중한 것이고, 되도록 좋은 밥을 입에 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나 봉단이네 식구들은 그냥 무심하다.
쌀밥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돌고 돌다, 돌이가 먹는 걸로 낙착되는 위 대목은 ‘사위 나리’의 속사정을 진술하는 첫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교차 서술되는데, 마치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율조(律調)가 있다. 더군다나 무심히 던지는 말들에 서로를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빛깔이 묻어 있다.
벽초 홍명희 자신이 식솔을 이끌고 살 만한 곳을 찾아 서울 곳곳을 전전하기도 하였거니와 옮긴 곳에서마다 가난한 이웃들의 살림살이도 눈여겨보았으리라. 그 빈곤의 사정을 말로, 또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웃의 처지를 작가로서 이렇게나마 대변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 쓰이면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 이상 남의 일은 아니리라.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목숨으로 여기는 작가로서 많이 고심하여 지어낸 대목으로 여겨진다.
이 소설이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1920~30년대 빈민의 생활상이 연결된다. 역사학자 강만길의 연구에 따르면, “1930년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조선인 전체인구 1,969만 명 중 약 80%인 1,556만 명이 농업인구였고, 그 가운데 120만 명의 화전민을 제외한 절반 정도가 자기소유를 거의 가지지 못한 농촌빈민이었으며, 이밖에 10만 명이 넘는 토막민(土幕民)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공사장 막일꾼이 있었고, 또 전체 남자인구의 10%가 넘는 실업자가 있었던 식민지시기 민중생활의 현실”(『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18쪽)을 고려하면, ‘밥’을 소재로 한 이 대목은 연재 당시, 독자들에게 특별한 ‘정조(情調)’를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차마 외면하지 못할 일에 직면하여 심중(心中)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꿈틀대며 눈떴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대목을 이렇게 놓아두지만은 않는다. 쌀밥이 돌고 도는 소란 뒤에, 사위 나리 이장곤은 고을 사또에게 쌀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고, 사또는 봉단이네 식구를 괴롭히던 도집강에게서 쌀을 징발하여 봉단이네로 보낸다.
사위 나리가 원의 답장을 뜯어보니 그 사연에 이 쌀은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요, 형의 매품을 도집강에게 추징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위 나리는
“원이 실없는 사람이로군. 도집강은 내가 애자지원을 갖는 사람으로 알았으렷다.”
하고 편지를 주팔에게 보인 뒤에 서로 바라보고 웃었다.
주삼의 아내는 이것을 알고 몇번이나 시원하다 고소하다 외치고, 또 입쌀밥을 지어서 식구가 돌아앉아 먹을 때에 이 밥은 별달리 맛나다고 떠들었다.
(『임꺽정』1권 177쪽)
모두 좋다. 함께 먹고, 서로 웃는다. 웃기도 무엇하고 울기도 무엇한 독자(讀者)의 머쓱한 심사를 다시 어루만져 웃게끔 한다. 마음이 더 아래 비탄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맨다. 마음을 다시 평상심으로 끌어 올린다. 작가의 붓끝이 세심(細心)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