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심 있는 기획-내부의 관점

개미실 마을을 아시는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중리에 위치한 개미실 마을은 50여 남짓한 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며 알뜰살뜰 산다고 하여 개미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당연히 개미실 마을의 시간은 이웃한 청주 또는 대전 같은 큰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리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0년 동네 뒷산을 깎으며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되더니 현재는 20여 가구의 귀농 귀촌인들이 입주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느 마을이 그러하듯이, 기존의 선주민(先主民)과 이주민들 간에는 대화와 소통이 부족하다. 선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고, 귀농 귀촌인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지만, 고립감은 어찌할 수 없다. 이런 상태를 그냥 방치할 경우 두 계층 간에는 이른바 ‘문화분단’ 현상이 더 심해지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심 가득한 ‘게으른 개미실 꽃차’
문제는 이러한 문화분단 현상이 더 심해져서 일종의 요새국가(a fortress state) 같은 상태로 변질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귀농 귀촌인들이 ‘빗장을 잠근 채’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는 마음의 문화를 견고하게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선주민-이주민 간 대화와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소설가 서성란의 장편 『쓰엉』(2016)은 베트남 여성 ‘쓰엉’이라는 존재를 통해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우리 안의 결혼이주민의 문제를 예리하게 다루고 있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방화’ 장면이 특히 충격적인데, 어쩌면 이 에피소드는 두 세력 간 대화와 소통 부재가 ‘사람 잡는 정체성’(아민 말루프)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예각 적인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선주민들 간에 암묵적 전제로 작동하는 무의식의 문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영화 <이끼>(2010)를 통해 충격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선주민들과 귀농 귀촌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media)가 필요하다. 미디어는 ‘매개’를 의미한다. 개미실 마을의 주민들 또한 그러한 소통의 창구와 더불어 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2019년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추진하는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에 참여한 앙상블 봄(대표 변상이)의 ‘게으른 개미실 꽃차’ 프로그램을 주목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지역 특성화 추가모집 심사 과정에서 게으른 개미실 꽃차 프로그램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참, 시시해서 좋았다”는 것이었다.
왜 ‘시시해서’ 좋았다고 말하는가. 현재 개미실 마을에 사는 기획자-주 강사 두 사람이 ‘꽃차’라는 사소한 기획을 통해 선주민과 귀농 귀촌인 마음에 작은 다리를 놓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획 의도가 읽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앙상블 봄의 기획자와 주 강사가 50대 어머니(강사)와 20대 딸(기획자)이라는 점도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동네 주민들과 ‘시간’을 함께하며 진달래, 금계 꽃, 아카시아를 비롯해 다양한 꽃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며 가드닝을 하고 꽃전을 부치고 가든파티를 즐기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서로의 사연을 조금씩 공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형성된 느슨한 관계는 의외로 힘이 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개미실 마을 주민들이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재미 또한 누릴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특히 기대된다. 마을 주민들 모두 자신의 특색 있는 화단을 가꾸고 있을 만큼 무엇인가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소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이 ‘내 삶을 디제잉할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백화점 문화센터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의 ‘케미’를 형성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만일 꽃차 만드는 기능 강습 위주로 짜인 프로그램이었다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교육은 선주민-이주민 참여자들이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며, 일종의 ‘이바쇼[いばしょ, 居場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바쇼란 내가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처소를 의미한다. 느린 시간, 멈추어 있을 장소, 느슨하나 지속적인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처소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쌓아가고, 관계의 전환을 위한 거점을 갖게 된다. 개인이 단위가 되는 작은 사회를 회복하고, 이웃이 있는 마을을 회복하며,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는 커뮤니티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프로그램 후반에 진행되는 ‘가든파티’가 중요하다. 가든파티는 겉보기에 근사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어쩌면 근사하지 않아야 더 좋을 수 있다.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는 ‘있어빌리티’의 강박관념을 버리고, 참여자들이 게으른 개미실 꽃차 프로그램에서 느끼고 준비한 자기만의 꽃차들을 준비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소소한 재미를 즐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지극히 사심 가득한’ 기획 의도를 잃지 않으며 진행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내 문제의식’을 기획하라
내가 사는 지역/동네에 뿌리를 내리는 기획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극히 사심 있는 기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무조건 사심(私心)을 가지라는 주문이 결코 아니다. 그런 사심은 흑심(黑心)이 될 수 있다. 기획의 출발이 바로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심사를 하다 보면 자주 접하는 단어들이 있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다문화가족’ ‘힐링’… 같은 단어들이다. 나는 이런 단어들을 접하면 기획서를 작성한 사람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 단어들은 문제의식이 너무나 ‘상투적’이고, 많은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특히 참여자들의 ‘개별성’이 중요하다. 내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할지도 중요하겠지만, ‘누구를’ 만날 것인가를 더 자주 더 많이 고민하고 관찰해야 한다. 특히 지역 특성화 프로그램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뒷짐 지고 슴슴하게’ 동네를 탐색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느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김수영)라고 말했지만, 이 점은 기획서를 쓰는 과정도 그렇다. 기획서 작성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기 전에 동네를 걸으며 생각하고 관찰하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결국, 기획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동네)을 구하겠다’ ‘나라를 구하겠다’ ‘장애인들을 구하겠다’는 식의 기획서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을 방증할 따름이다. 내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떤 ‘한 사람’을 가정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의 처음과 끝을 그려보며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점 때문에 개미실 마을에서 진행되는 게으른 개미실 꽃차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기획과 진행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 신뢰가 가는 것은 두 모녀가 서로 손잡고 ‘내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라는 점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든파티 날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불청객 신세일지언정 개미실 마을 사람들이 기꺼이 환대(歡待)해 줄 것만 같은 ‘근자감’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