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와의 만남”
문화예술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큰 경계는 아무래도 관객과 참여자로, 청중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관객의 입장에서 경청하거나 관람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화예술활동의 일부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만나는 이들은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 역할 한다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참여자와 문화예술교육자의 관계가 매우 다양하다. 문화예술교육자는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인 경우가 많고 참여자들의 경우, 특정 연령이나 공통의 대상군일 때가 많다. 이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특정 참여자를 상상하기에 설정되는 부분이다.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현장이 조성되고 참여자의 특성에 따른 관계가 만들어진다.
많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는 교육을 받는 대상이 아닐 때가 많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교육의 의미도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더 이상 교수자가 수업을 이끌어 기술이나 학습적 성과를 높이는 방식이 아닌 교수자가 앞을 소개해주는 가이드와 같은 성격의 운영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참여자와 문화예술교육자는 서로 곁을 내주는 방식의 형태로 함께 현장을 구성한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항상 참여자가 있으며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교육자, 재료, 도구, 공간, 장소 등은 참여자를 맴도는 주변으로 작용하며 예술적 경험을 직, 간접적으로 제공하는 장치에 불가하다. 이는 “학생은 태양이고 다른 것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1859-1952)의 말과 닮아있다. 이처럼 참여자를 둘러싼 많은 요소 중 하나가 교육자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자의 태도 중 가장 큰 덕목일 수 있겠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 문화예술교육”
이처럼 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되고 회자 되었던 사안이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9년 12월 창궐한 전염병 코로나19 사태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가 모두 이런 캠페인과 제약을 실행중에 있는데 이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포(rapport: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형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비대면식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나 한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비대면의 방식이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물리적 거리형성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비대면 교육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이미 공예나 취미활동을 위한 기능교육 위주의 사교육에서는 많은 부분 발전이 있었고 영상기반의 SNS의 확대로 활용방법의 다각화는 전염병 사태 이전부터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그 시장 더욱 확장되고 교육 활동의 전반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기능교육에 국한되는 경향이 심하며 문화예술교육에서 연구되고 교육학적으로 강조된 사안들이 접목하는데는 많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수직적 교육에 관한 폐해는 오랜시간 동안 증명되었고 비대면 교육 대부분의 방식이 일방적인 형태이기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명확하다. 이런 특성이 바로 가장 큰 한계일테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문화예술교육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른 방식의 문화예술교육 방법을 연구해야하는 시기인걸까.
누군가는 전자를, 누군가는 후자를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스스로가 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여지껏 연구되던 문화예술교육 발전에 반대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견지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시대를 담다.”
동시대미술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뤄지는 점은 시대를 잘 담아냈는가에 있다.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그의 저서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 “예술에는 현실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함께 담는다”라고 하였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는 주체는 기금을 통한 방법일 때가 많은데 실행 방법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문화예술교육을 문화예술활동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닌 일종의 사업으로 시각하는 것에서 한계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혹은 지금의 전염병 시기를 단순 해프닝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시대의 변화로 판단하느냐의 차이와도 맥을 같이 한다. 단순히 많은 향유자를 배출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로 판단하였던 실수는 이런 실행 방법 변화에 큰 제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태는 사회 전반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한계와 문제를 들춰내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잔잔해진 물에 돌맹이가 하나 떨어져 파장이 생기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시대와 변화를 담아낼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화예술교육”
오랜 세월 동안 문화예술교육은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제야 우리 지역에서, 생활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깊이 다가오고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문화예술교육과 발전성이 무궁한 사례들이 많은 한계에 봉착하여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시도되었던 유의미한 사례들에 대해 기록하고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참여자와 함께 도모하는 방법을 상상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발견된 한계를 극복하는데 관련 분야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또한 시대적 고민을 담아내는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와 시대에 있어 큰 의미를 갖고 앞으로를 상상하는데 유용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이제 단순 교육 현장을 넘어 문화예술활동 자체이기도 하다. 참여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으로의 문화예술활동은 이미 다른 언어의 문화예술교육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가 시대를 고민하는 문화예술교육자가 되어 지난날 도출된 많은 태도들과 함께 연구자적인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봐야 하지않을까. 우리는 아마도 새로운 시대의 첫걸음에 서있는 것일지도 모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