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예곡에서, 바움, 아르보, 나무달팽이, 스네일투어 등 삶의 궤적
옥천읍 양수리에서 '더 웰라이프 스타일 가든 양수리'로 곧 재탄생
텍스타일디자인부터, 농가맛집, 다양한 문화예술교육과 공정여행까지 섭렵
대열에 이탈하는 건 쉽지 않다. 낙오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표준을 참칭하는 시대에서 다른 길이란 사실 가시밭길이다.
바쁜 시대, '빠르게', '열심히'란 구호가 여전히 횡행하는 시대에 '느리게'와 '적당히'란 구호는 뱁새눈을 뜬 사람들한테 욕 들어먹기 십상인 말이다. 그렇다고 발빠르게 유행하는 '힐링'과 '치유'를 내걸고 '돈벌이'를 하기 위함도 아니다. 지친 삶 속에서 그런 삶을 동경하고 잠시잠깐 맛 보았다가도 생계가 유지가 안 돼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경우도 여럿 봤다. 시스템과 체계가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오에 이탈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삶'이 유지가 되어야 한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골로 간'이란 표현은 사실 귀농귀촌의 흔한 레퍼토리였다. 그렇게 보도했다가 나중을 살펴보면 정착하지 못했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 초반에 과거 이력으로 주목받다가 정착,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봤다.
ᅠ그런데도 그는 신기하게도 살아남았다. 여전히 건재했다. 건재하다 뿐이랴. 끊임없이 관심사를 옮겨가고 진일보하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2001년 고향 청산 예곡폐교에서 시작한 천연염색부터 점점 확장해 온 패션 디자이너, 그는 이 재능을 십분 활용해 '바움'이란 업체를 만들고, 심지어 원광대 패션디자인산업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아 대덕대 패션리빙디자인학과 겸임교수까지 맡았다. 그리고 여러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결합해 협동조합으로 만든 아르보, 그리고 농가맛집 '나무달팽이', 스리랑카-네팔 등 자주 가보지 못한 제3세계를 느리게 여행하는 '스네일투어'까지.
그는
새롭게 발을 들인 영역에서부터 깊고 또는 넓게 조금씩 무게중심을 이동해갔다. 20여 년 전 017로 유명했던 신원텔레콤 마케팅 사업부에 근무했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20년 인생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맡은 직책이 여러개고, 하고 있는 일이 다양해서 '문어발식 확장'아니냐는 농담섞인 우스개소리도 듣지만, 관통하는 맥락은 하나다.
“ 자연스럽게 사는 걸 늘 고민했다 ”
'자연'이다. 자연스러운 삶을 위해 그는 늘 생각했다. 자연속에서도 나무, 묵묵히 오랜세월 뿌리내리며 자라온 나무에 천착했다. '아르보'는 그리스로 나무란 뜻이고 '바움'은 독일어로 나무란 뜻이다. 나무달팽이란 이름에도 나무가 들어간다. 인공적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연에 근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란 화두가 그의 마음 속에 늘 있어 왔다.
청산면 지전리 출신으로 청산초를 다녔던 그가 고향에 돌아온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10년 넘게 둥지를 틀었던 폐교를 떠날 당시 고향을 등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옥천읍내 한적한 양수리로 들어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천연염색에 갇혀있던 그의 관심사는 조금 더 다양해졌고 각 분야에서 만개했다.
전희관(55)씨다. 2013년 옥천읍으로 옮기면서 청산 예곡이 옥천 바움이 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천연염색을 비롯해 각종 공예와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바움생활공예디자인학교를 열고,
복합문화공간이란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음식과 차를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하게 된 것. 정착한지 2년 만에 농가맛집 슬로푸드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름은 '그린도어즈'와 '나무달팽이'를 고민하던 중에 철학이 담겨있는 나무달팽이로 걸고 시작했다.
ᅠ옷의 염색에서 시작한 그는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에서부터 음식까지 확장해갔다. 그리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지역예술인과 어울려 아르보 문화예술협동조합(이사장 이경형)을 만들어 이사를 맡았다.
더불어 문화예술의 숲을 만든 그는 여행까지 섭렵했다. 남들 다 가는 유럽, 북미 여행이 아니라 잘 가지 않아 낯선 제 3세계 국가인 스리랑카를 중점적으로 팠다. 20년 전 아내 이정미씨가 유학한 나라 스리랑카, 홍차와 보석과 불교의 나라, 섬 자체가 깨끗하고 자연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에 반해버렸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아직 개발이 덜 되었다는 것이 더 매력 있었다. 그는 이 좋은 여행을 함께 하고 싶어 '스네일 투어'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공정여행, 관광지를 도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서 다른 삶을 배우고 느끼는 그런 여행이다. 빠르게 후딱 몇 개국을 섭렵하는 여행이 아니라 한 나라에 고즈넉하게 머물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여행이다. "현지인 집에서 함께 먹는 식사, 현지인들의 삶에 녹아들어가는 여행, 그런 여행을 꿈꾸었죠. 2015년 우연히 투어플래너(여행설계자) 교육에 참여를 해서 스네일 투어를 만들게 되었어요"
“ 마케팅에서 텍스타일디자인, 공정여행까지 ”
다른 선택을 하면서 그는 삶을 다채롭게 보내고 있다.
"제가 그 때 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유명 통신사에서 연봉 두둑하게 받으면서 일하고 있겠지요. 제 입사동기들이 다 그렇게 지내니까요. 그런데 이 선택을 별로 후회한 적이 없어요. 얽매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다르게 보내니까요. 물론 쉽지 않아요. 지속가능하려면 생계 유지가 가능해야 하니까요. 아무리 가치와 의미가 좋다한들 먹고 사는게 해결이 안 되면 힘들겠지요. 그래서 좋아하는 걸 찾고 많이 공부했어요. 제가 학사는 마케팅 경영학을 했는데 박사가 패션디자인학이니 얼마나 널을 띄었는지.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경험들이 패션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 직접 디자인한 원단을 수출한다. 다양한 텍스타일 디자인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생계의 대부분을 해결한다.
그렇다고 텍스타일디자인만 가지고 그를 설명할 수 없다. 문화예술하는 7명의 지인들과 꾸준하게 콜라보를 하면서 아르보 협동조합을 같이 운영하고 있고 나무달팽이도, 스네일투어도 함께 가동한다.
"바움, 아르보, 나무달팽이, 스네일 투어 등 여러가지가 혼재되어 있다보니 햇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 저를 설명하는 말들이긴 한데. 그래서 산재된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하는 통합브랜드를 런칭하려고 고민 중이에요. 가칭이긴 한데 '더 웰라이프 스타일가든 양수리' 이런 개념으로 통합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삶이었다. 하나만 가지고 특화하려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든 영역을 전환할 수 있다면? 바쁜 삶보다, 돈을 최우선 가치로 놓는 삶보다는 자연과 함께 느리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싶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나 교육이 획일화 된 삶을 추동하죠.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벗어나면 마치 낙오자인양 낙인을 찍어요. 그런 것을이 이미 사회화 되어서 각 지역의 맘 카페 같은데 가보면 정말 한방향으로 키우고 동조하는 여론들이 보여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그걸 또 보니까 결국 못 벗어나는 거에요. 빨리 탈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 움켜쥔 걸 놓아야 새로운 걸 잡을 수 있어 ”
움켜쥔 것을 놓으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공간을 잠시 잠깐 경험하면서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힐링과 치유하는 방법을 느끼고 천천히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꿈꿀 수 있도록
이 공간이 버팀목이자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4주 동안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쿡앤 플래이'(밥상에서 놀자)란 프로그램도 가족 신청으로 받았다.
"가족들이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빠, 엄마, 자식들도 같이 생각을 공유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같이 설계할 수 있거든요. 다른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 미래를 정해놓고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다른 삶을 지키는 것은 아름답지만 고되었다. 문화공간 예곡의 폐교를 지킬 때도 보이지 않게 한국어 강사 자격증으로 한국어 강의를 수차례 했었고 강의비로 폐교 운영비를 충당했다. 지금도 그런 삶은 마찬가지다. 한국어강사에서 지금은 텍스타일 디자이너와 교수로 돈을 버는 것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다른 삶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농민들에게 편하고 좋은 옷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기껏해야 개량한복 입는 문화에서 유기농 순면을 재료로 한 세련된 디자인으로 편하면서도 보기 좋은 그런 옷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답니다."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했다. 정형화된 틀에 갇히려 하지 않았고 자연과 근접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적어도 모두에게 이로울 거란 확신을 갖고 살았다. 앞으로 하나로 뭉쳐질 더 웰라이프 스타일가든 양수리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감쳐줬던 여유와 쉼이 밀려들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