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아트가 리사이클링, 에코, 키네틱 아트를 거쳐 ‘펀 아트’로 집대성
만져도, 사진 찍는 것도 안 되는 예술의 금기를 넘어 오감으로 느끼다
충주 앙성면 능암폐교에 자리잡은 오대호 작가의 오대호아트팩토리를 가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어렵다. 그들만의 성채에 갇혀 있다는 인식, 향유하는 계층이 따로 있다는 어떤 편견에는,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의 열악함의 방증이기도 하다. 손을 대면 안 되고 멀리서 봐야 하고,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여러 제약 요건들이, 예술 작품 앞에 서면 ‘움찔’하게 만들고, ‘멈칫’하게 만든다. 비구상화나 조형물 앞에서면 더 작아진다. 작가가 뭘 말하려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주눅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관은 사실 재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한 작품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쓱 지나가버리기 일쑤, 웃고 떠들고 만지고 장난치기를 못하니까 아이들한테 인기가 없다. 하지만, 충주에 있는 오대호아트팩토리는 다르다. 아이들의 예술놀이터이다. 모든 금기를 깨부순다. 만져도 되고, 사진 찍어도 되고, 타고 놀아도 된다. 고장나도 괜찮고 훼손되고 괜찮다. 다만 '다치지만 말아다오’라고 말한다. 아마 이런 금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제도권 교육울 받지 않고 독학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면 기존 성채의 언덕 위에 올라갔거나 그랬을 지도 모른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흥미로워 하는 것으로 그는 진화했다. 비싼 재료를 쓰지 않고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을 활용해
‘정크 아트’란 장르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척하더니 그것을 리사이클링 아트, 에코 아트 등 다른 이름으로 변주되다가 조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키네틱 아트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최엔 이 모든 것을 펀 아트라고 부른다. 의미 뿐만 아니라 재미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요즘엔 예술이 접목된 움직이는 자전거, 아트 사이클에 꽂혀 있다. 보고 만지는 흥미 다음에, 직접 타고 온몸으로 느끼는 재미가 뒤따라야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신기한 자전거의 페달을 구르면 가는 경험들은 정말 재미지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는 ‘신상 개발’에 몰두한다. 끊임없이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해서 아트에 팩토리를 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또 놀러온다. 새로운 ‘신상’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러 말이다. 그렇게 명소가 되었다.
2007년 충주 앙성면 폐교가 된 능암초는 12년 만에 다시 아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버려진 곳과 버려진 것이 만나니 새로운 명소가 만들어졌다. 충주시와 오대호(66) 작가의 힘이다.
음성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를 ‘모셔오는’ 충주시의 안목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충주시는 아예 2019년 능암폐교를 교육지원청에서 매입하고 주변 시설을 정비한 다음 그에게 임대를 해줬다. 그는 충주시에 임대료를 내고 안정적으로 사업비 4억원 가량을 투자해서 폐교를 오대호아트팩토리로 리모델링했다.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 전인 3일 개관할 때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6개월 동안 방문객 3만명을 가뿐히 찍었다.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는다. 한 사람당 5천원씩, 그 안에는 다양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보고 느끼고 만들 수 있는 공간들과 함께 커다란 운동장에는 신나게 아트사이클을 탈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라 하는 로봇들이 군데군데 서 있고, 다양한 폐기물로 형상화 된 물건들의 재료를 알아맞히는 재미도 있다. 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움직이는 것도 색다른 재미, 단체로 오면 직접 폐기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재료를 사지 않고 재활용 되는 예술이란, 쓰레기를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그는 여러가지 의미를 결합시키면서
오대호아트팩토리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가장 핵심은 정크다. 버려진 폐기물이 예술로 부가가치가 높은 예술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작품들을 누구나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예술에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폐 소화기로 만든 미니언즈는 또 색다른 느낌이고, 폐타이로 만든 코뿔소와 용의 형상은 어떠한가? 폐기물이라는 재질이 주는 친근함과 익숙함들은 작품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쓰레기가 쓰레기가 아니었구나’, ‘폐기물도 어떻게 손을 대고 만드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재탄생하는 거구나’ 라는 느낌을 듬뿍 준다.
그리고 누구나 만지고 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 작품의 훼손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껏 개방했다는 것도 새로운 자세이다.
불과 1년 만에 충주의 대표 명소가 되다
불과 1년 만에 ‘충주에 가면 오대호아트팩토리로’라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충주시의 대표관광지로 자리 잡은 것은
충주시의 기획과 오대호 작가의 추구하려는 지향이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폐교를 교육지원청 재산으로 그냥 방치하지 않고 과감히 매입하여 싹 바꾸어놓고 컨텐츠가 될 수 있는 작가를 물색해 모셔왔다는 것, 다시 폐교에 아이들과 온 가족이 올 수 있는 살아있는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것은 큰 전환이다. 충주시는 매입을 해놓고 임대를 줘서 임대료라는 세수를 올릴 수 있었고, 작가는 입장료를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입장료 뿐만 아니라 음료와 여러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카페 운영도 중요한 수익 모델 중 하나이다. 이렇게 자체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컨텐츠를 가지고 있으면 작가는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음성 가섭산에 있는 작업장에서 매번 고물로 새로운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트럭에 직접 싣고 와서 전시한다. 그래서 오대호아트팩토리는 매번 와도 똑같은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하나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버림받은 것들의 유쾌한 반란’, ‘부서져도 괜찮아요. 마음대로 만지세요. 오감만족 폐품 갤러리’, ‘정크, 그들이 움직인다’, 언론사 기자들은 이런 재미난 현상에 맘에 드는 제목들을 쑥쑥 뽑아 올리니 절로 마케팅이 된다. 이런 동력을 가능하게 한 그가 문득 궁금해졌다.
비제도권 작가, 독학으로 우리나라 최초 정크아티스트가 되다
“원래는 시골에 있는 호원대학에서 기계를 전공했죠. 나중에 제도권 예술가들이 정통이니 뭐니 하도 이야기 하며 그래서 정통예술이 뭘까 해서 뒤늦게 관동대 조소과를 다니기도 했어요. 정크아트는 1950년대 미국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 그리던 걸 고장난 삼각대를 거기 붙이면서 시작됐다고 그래요. 2차 세계대전 때 버려진 무기들을 가지고 전쟁의 폐허를 고발하는 용도로도 활용됐구요. 제가 어렸을 떄부터 손재주는 좀 있었어요. 음성에서 공장을 운영했는데 공장 뒤켠에 제작부가 있었는데 거기 모인 고물가지고 여러가지를 만들어보긴 했죠. 그 때만 해도 직원 100여 명을 데리고 열심히 산업전선에서 일하고 있었죠. 플라스틱 계란판을 주조했었는데 정부 방침이 종이계란판으로 바꾸면서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었죠. 공장 정리하면서 낚시터에 가서 낚시를 하는데 우연히 잡지를 본 거에요. 프랭크 스텔라의 고물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 몇 십억을 호가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도 해볼까 하고 시작했죠. 그 잡지의 그 기사를 안 읽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에요.”
그의 본적은 충남 부여인데 서울에서 대부분 자랐다. 분당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다가 음성에 땅을 산 것이 충북과의 첫 인연이었다. 지금도 그는 분당의 아파트를 팔아서 음성 가섭산 밑의 2천평의 부지를 샀고 거기서 고물을 모아 작업을 하고 있다. 왠만한 공장 기계를 다 구비하고 있다. 집게차도 갖고 있어 직접 고물을 가져 오고 기계톱으로 썰고 용접을 하면서 하나씩 작품을 만든다.
“맨 처음에는 거기서 정크아트 갤러리라고 해서 꾸며 놓고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그랬어요. 매스컴에 그 때도 적잖이 나왔는데 같이 있다보니 주방장이 여차저차해서 나가면 제가 돈가스 튀기고 그랬지요. 작품활동을 못 하겠더라구요. 그 때 여기저기 사업을 많이 벌였어요. 보은에 펀파크도 만들고, 영동 유원대에서 교수 생활도 하고 그랬지요.”
그는 이제 모든 작업들이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중에는 아트팩토리 인근에 정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높으신’ 예술가 양반이기보다
‘늘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어주는 허허허 거리는 털보 아저씨로 통한다. “아이들이 물어요. 신형 언제 나오느냐고요. 저는 아이들이 즐기고 웃는 것만 봐도 참 행복해져요. 마구마구 타도 된다. 고장나도 되니까 다치지만 말아다오 라고 말해요. 부서지면 다시 제가 손보면 되니까요.”
“제 작품에는 미술 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 등이 다 들어있으니까요. 원리를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죠. 10번 20번씩 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말한다.
정크아트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쓰레기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켜주면 좋겠다고.
“제가 이렇게 작품 몇개 만들었다고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버려진 것들을 재창조해서 조형물을 만드니까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도 주고, 아이들도 아저씨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니까 거기서 보람을 얻는 거죠. 아이들이 집에 갈 때 ‘작가님 짱’, ‘에버랜드보다 좋아요’라고 말해 줄 때 기분이 참 좋지요.”
평범한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쓰레기가 예술가의 손에 닿아 멋진 곳으로 재탄생했다. 오대호아트팩토리의 존재는’ 근엄한' 미술관의 변화를 새롭게 촉구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