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을 참여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중 가장
우리가 섬세하게 다가가야 하는 대상 중 하나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예술교육에서 교수자는 예술가일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평소 만나는 참여자와 달리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참여자들은 섬세한 이해가 없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예술 강사가 대상에 대해 몰이해하다면 그 현장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진행하는 많은 이들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경험에 의한 데이터가 많고 특수교육의 경우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의 시선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특수교육전문가의 시각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것일까?
독일에서 특수교육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온 부부가 있다. 현장을 고집하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활동 중인 킨더리베조기교육연구소를 찾아 이상필 소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킨더리베조기교육연구소>의 이름은 어떤 뜻 인지 궁금합니다.
킨더리베는 아이사랑이라는 독일어입니다.
조기교육이라는 말은 특정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조기에 찾아 교육을 통해 치료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조기교육이 영재교육을 뜻하는 언어로만 사용되는 경향이 있어 최근에는 조기교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킨더리베연구소> 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그렇군요. 저도 조기교육이라는 말이 영재교육, 어린아이 교육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조기에 진단하고 교육, 상담 치료를 진행한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도 연관이 있나요?
우선 장애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장애’라는 표현이 신체적, 정신적인 것일 수 있는데, 의학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이전에는 장애를 손상(impairment)의 의미로 주요했었고, 다음 단계에서는
능력적 측면의 장애(disability)를, 이런 상황이 방치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handicap)으로 계속되게 되는 것 등 의학적 측면인
기능의 손실에 초점을 두고 장애를 바라봤습니다.
최근에는
개인이 갖는 활동성을 얼마나 잘 펼쳐주느냐, 나아가 사회참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방향을 둔 교육과 장애에 대한 해석이 나타납니다. 장애를 펼쳐지지 못한 활동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기능적 소실 등에 판단을 둔 접근은 동정에 기반으로 하기에 섣부른 판단과 오류를 야기 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의학적인 측면, 기능의 손실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소통의 어려움, 한계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교육을 하면서 예술을 활용해 본 적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이 문화예술교육현장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상담 치료나 교육을 하면서 사실 놀이나 탁구와 같은 운동, 미술 등을 자주 활용합니다.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리자면 연구소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가 있었는데요. 어쩌면 저에게도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게 해준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언어적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종이와 색(물감 등)을 활용하여 소통을 이끌게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 또한 미술에 대해 어렵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표현해낸 것들은 그런
결과가 아닌 일종의 언어의 도구였어요.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표현과 행동들이 종이와 색을 통해서 나타났고 저 또한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연구소에서는 철저하게 1:1 수업을 진행하고 친구들(교육대상)과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시도하고 활동성을 확장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연구소에서 추구하는 일종의 교육철학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희의
최종 목표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것’으로 합니다. 장애에 대해 이야기 드릴 때 활동성을 언급했는데요. 사실 이런 것들은 자기애가 온전히 구축되어있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교육의 목표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킨더리베연구소의 활동 모습을 사진에 담거나 할 순 없었다. 상담과 교육이 1:1로 이루어지고 개인의 영역을 지키며 소통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여년 동안 고수해온 방식으로 현장의 이해가 깊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많은 부분 예술을 교육의 목표이자 방향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술적 경험의 중요성, 그렇기에 어떤 예술인가가 중점 중 하나였다. 킨더리베연구소의 현장에서는
예술이 대부분 소통의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예술 본연의 의미보다 표현자(대상자)의 심리와 상태가 더욱 중요하였다. 개인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문화예술교육의 이상과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상필 소장과의 대화 내용은 사실 본 원고보다 더욱 길지만 모두 실을 순 없었다. 2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에서 발견한 것은
특수교육자의 시선은 교육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생각해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되었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섬세하고 천천히 개인의 영역을 온전히 지켜주며 소통한다.
단기간의 성과를 만드는 것이 아닌 과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에서 태도로써의 교육을 떠올리게 하였다.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다양한 교육자들이 이를 연구, 실행하고 있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고 국민들에게 보급되고 있는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현장에서 저마다의 언어와 방법을 통해 이상적인 교육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예술인들의 장애인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잘 준비하고 섬세한 접근으로 좋은 현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빠르게 바뀌고 있는 시대에서 천천히, 찬찬히 소통해야 하는 대상들에게 마저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큰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