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르다'는 점에서, 타인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의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는 타인을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서로 다름은 존재하며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안팎에서 다름은 '일이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을 좌절시킨다. 서로 다름이 공포를 만들 때, 그것은 늘 싸워야 하고 섬멸해야 하는 대상인 '원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파올로 스퀴차토, [불완전한 나에게]中) (청주맹학교-시각장애인 대상 수업 中)
우리는 서로가 다 다르다. 너와 내가 다르고 나와 세상 모든 이들은 서로 각자 다 자기만의 다름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나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점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에서 시작된다. 이 글에서는 우리음악을 소재로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는 예술교육자라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나의 장애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이전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용어에 대한 정의를 먼저 공유하고 싶다.
‘장애문화예술교육’ - 이 긴 용어를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안에 너무나도 많은 구분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미 용어에서 다름을 구분 짓고 있다. 예술의 본질은 ‘나’를 표현하는 것에 있으며, 여기에서의 ‘나’는 각자의 개인이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 욕구와 그것을 표출하는 활동에 ‘장애’와 ‘비장애’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라는 개념 속에 존재하는 개개인은 각자가 다 다른 특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예술적 욕구와 표출방식 역시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개자’ -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문화매개라는 개념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되고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발족되면서 문화예술교육매개자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문화예술이 특권측의 향유물에서 대중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7-80년대에 이르러 교육활동을 통해 문화예술향유권을 확대하려는 개념이 문화매개이며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문화매개자이다.
‘장애문화예술교육매개자’ - 이 용어 속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이 사회 속에서 동등한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를 장애인들이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용어의 차이란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문화는 정책과 사회구조가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문화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1. 나의 이야기 – 필자는 남들과는 비교적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영향으로 우리가 사회성이라 부르는 부분이 결여가 되고, 왜곡된 성향을 가지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들어간 대학에서 탈패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장구를 치고, 꽹과리를 치고, 술을 마시고 꼬장도 피고, 학교에서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다녀도 ‘재네~원래 저래’하는 이상한 사람들. 1~2년이 지난 뒤에는 주변에 광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있었다. 3년이 지난 다음에 내가 이상한 놈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한 선배가 그 동안 하지 못 했던 말이라며 “상진이, 많이 사람되었네”라는 이야기를 던져왔다. 선배 왈, 사람 속에 있어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아마도 그 선배가 말하는 사람은 생물학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사람이라 말했던 것 같다.
20대 후반에 만난 동네 후배가 나에게 ‘살아있어 주어서 고맙다. 어렸을 때의 형은 금방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 보기 좋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들은 나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주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의 문화 속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는 치유가 되고 있던 것이다.
2. 풍물이야기 – 풍물, 또는 농악이라고도 부르는 이 연희형태에는 연희집단에 따라 전문예인집단의 연희와 마을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마을굿이 있다. 전문가들이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어울려 놀기 위한 것. 그 중 마을굿을 보자. 이 안에는 꽹과리, 장구, 북, 징, 악기를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놀면서 흥을 돋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안에는 가락을 잘 치는 사람도 있고, 못 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같은 덩덕쿵이 한 장단을 치는데 모두가 똑같은 가락을 연주하지 않는다. 악기를 못 치는 사람은 춤을 추어도 좋고, 손뼉을 쳐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들이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다. 가락이 능숙한 사람은 어려운 가락을 치고, 가락이 익숙치 않은 사람은 쉬운 악기나 쉬운 가락을 친다. 모두의 영역이 존재하고, 또 그 안에서 각자의 영역이 존재한다. 함께 즐기는 와중에서도 모두가 즐겁게 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있고, 내가 즐기기 위한 것이 있다. 보여주기 위한 것에는 ‘잘’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생겨난다. 마을굿의 공동체문화의 한 형태를 잘 보여주는 형태이다. 마을굿에서 배려와 포용을 배우고 나와 우리를 배운다.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에서 나의 역할은 그들에게 그 들의 마을굿을 만들어 주는 것과 ‘그’에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3. 공동체문화 – [유럽인이 오기 전 북아메리카에서 토착민이 사용하던 지역언어의 수는 2,000개가 넘었고, 다른 부족을 만날 때면 그들은 상시적으로 수어를 사용했다. 그런 사회에서 농인은 청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착민 공동체에서 인간의 가치는 개인의 독자적 역량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규정되었다. 다른 이들의 노동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역할을 하는 한 농인은 유의미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것은 맹인도, 한쪽 팔만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후 북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정착하고 노예제 사회가 되면서, 그들은 능력 있는 몸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경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어떤 흑인들은 사망 시 보험금이 그들의 몸값보다 높다는 이유로 바다 상어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다. 운 좋게 노예선에서 살아남아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경우에도, 그들은 ‘폐품 노예’로 불리며 헐값에 처분되거나 버려졌다 ] 『장애의 역사』(킴 닐슨)
사람은 생산의 도구가 아니다. 서글프게도 장애문화예술교육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 중의 하나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이다. 당연히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고 자기 자신의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 첫 번째 명제 조건이여야 한다. 그리고 이 것은 ‘작은 단위’의 공동체문화가 형성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 함께 산다’ 라는 것에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문화예술교육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센터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