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문화예술교육이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니, 미래 인재니 하는 시대적 상황이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지식을 암기하고 기존 세대들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 알고 있는 지식의 활용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상황에 맞춰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예산을 쏟아가며 만들어가고 있는 분야가
학교문화예술교육이다. 충청북도 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업들만 보아도 청소년 오케스트라, 청소년 국악 오케스트라, 청소년 극단, 감성소리숲, 행복교육지구, 마을교육과정 등 예술을 중심으로한 것들이 많다. 또한 학교 단위에서도 예술중심의 방과후학교 운영, 예술꽃 씨앗학교, 예술이음학교 등 각종 지원사업과 공모사업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정작 예산지원이 끊이거나 혹은 관심있는 교장이나 교사가 떠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고 전통적인 교육방법으로 돌아가버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제도들을 시행해보아도 결과는 언제나 같다. 이럴 때면 학교교육의 회귀성은 연어의 그것보다 더 강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결국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험들이 전국의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TA사업, 경기도 성남교육청의 성남형 교육과정, 충북문화재단의 헬로아트랩이 이러한 실험의 대표격이라 하겠다. 흥미로운 점은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런 사업들의 공통점은 예술가와 교사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의 프로그램 개발과정에서 교사가 참여하여 예술가와 함께 협력하고 교육과정을 분석, 재구성한다. 하지만 반드시 협력이 잘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사실은 학교와의 협력프로그램에 참여한 많은 예술가들이 학교에서 다시는 예술교육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만큼
예술과 교육의 협력은 어려운 문제다. 교육자들도 마찮가지다. 예술과 만나지 않고 교과서만 충실하게 가르쳐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한데 굳이 개인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예술과의 협력수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예술과 교육의 협력은 매우 희귀한 일이되고 잘 협력하는 프로그램은 주목을 받는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왜 중요한지는 말하자면 입 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교육도 그러하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일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예술과 교육을 하나로 볼 때, 인간의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내고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예술과 교육의 만남은 지속되어야 한다.
김인화와 정순목은 그들의 저서 『한국문화와 교육』에서 예술과 교육의 유사점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성격을 다시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데 있다. 이것은 예술에 있어서 조화의 원리와 같다. 둘째, 예술의 가치란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이며, 예술이 인간의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교육과 같다. 셋째, 섬세한 감정과 강인한 의지에서 나오는 창조력은 예술가와 교육가가 지녀야 할 요소인 점에서 공통된다. 넷째, 예술이 인간에 비치는 몰아적 사랑과 정열은 예술가와 교육가의 천분으로 높이 사는 점이 비슷하다.(다음백과사전 인용)
김인화와 정순목 이외에도 예술과 교육의 공통점,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은 많다. 구글 검색창에 몇 자만 두드려보아도 관련된 학술자료들이 쏟아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교육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시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과 교육의 협력은 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일까?
첫 번째 답은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적 영감과 개인의 삶 속에서 이해한 것들을 표현해야하는 예술과 달리 학교는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있고 성취해야하는 목표가 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예술은 교육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두 번째는 학교문화의 경직성 때문이다.
예술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인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며, 특별한 절차도 정답도 없다. 그러나 학교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개인의 표현 보다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위계질서와 개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움직이며, 까다로운 절차를 지켜야한다.
세 번째는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 외에도 생활지도와 민원과 각종 업무가 있다. 협력을 하려면 함께 만나고 이야기 나눌 시간이 필요한데 교사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교과서만 가르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개인적인 시간을 들여 예술가들과 협업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경우도 많다.
최근들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으면서 학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하면서 이런 사정들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4차 산업혁명이 올 것이라거나 혹은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때문에 우리가 고민할 문제들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원래 교육은 시대와 상관없이 ‘어떻게 아이들끼리 협력하게 만들고 스스로 배울수 있는 힘을 길러 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협력이 예술과 교육의 본질이고 마침내 본질로 돌아가려고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니엘 핑크는 2012년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 인재의 6가지 조건으로 공감, 스토리, 디자인, 문화, 놀이, 의미를 제시했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예술일 것이다. 또한 OECD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연구한 DeSeCo Project의 결과로 지적인 도구 활용, 자율적 행동, 사회적 상호작용을 미래인재의 핵심역량으로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역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다.
다니엘핑크의 미래인재의 조건도 OECD가 제시한 미래 역량도 모두 예술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부차적인 산물이다. 모든 아이들의 삶에서 예술은 너무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예술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스스로 가꿔나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과 교육은 만나야하고 어느 시대보다 지금의 시대가 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예술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특별한 재능을 가진 몇 몇 사람들만의 예술이 아니라 공공예술로 모두가 즐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이 되었다. 어디에나 예술이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예술이 삶의 일부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은 교육과 만날 수 있다. 교육의 특징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도 그러한 고민의 작은 결과물이다. 아이들에게 협력이 중요한 시대! 그러나 우리들은 협력하지 않는 시대! 이러한 문화를 깨고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다시 바라보고 예술과 만나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한다. 교사들은 예술가들과 협력하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들고 학교로 가야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삶’과 ‘앎’이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