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2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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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다 -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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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작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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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정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협력팀장
huhj@arte.or.kr

허윤정
방문한 지역에 어떤 공간들이 있는가를 보면, 그 지역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기자기한 갤러리나 헌책방이 많은지, 화려한 쇼핑센터가 많은지의 풍경을 미루어 그 지역의 삶이 무엇에 치중되어 있는지, 지역의 욕구가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벌어지는 공간들로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 유형과 범위는 정책의 방향에 따라 알게 모르게 변화해왔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최근으로 올수록 지역화가 강조되면서 당초에는 다른 용도의 시설을 할애하여 이루어지던 문화예술교육의 공간은 마을로 확장되었다가 차츰 전용공간의 필요성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교육지원팀 전화번호 안내
  프로그램 지원(2005~2011) 인력 지원(2012~2018) 기반 조성 이후(2019~)
철학
  • 접근권(문화복지, 문화의 민주화, 전문성)
  • 접근성과 고유성(수월성)
  • 예술+기술
행정과 전달 체계
  • 1년 단위 지원(강사, 단체)
  • CoP, 시범 사업, 컨설팅
  • 아카이빙과 결과물 기록 및 효과성 평가 부재
  • 협업(R&D, D&I)
  • 랩: 실험적 접근과 개발
  • 인력 양성
  • 지역화
  • 역할의 세분화
인력
  • 지역 기반의 예술가, 단체 확장 취약
  • 문화 기획
  • 연수 및 양성(관심, 경험의 축적)
  • 장르 전문가
  • 융‧복합
공간
  • 문화 및 복지 시설
  • 학교
  • 단체 공간(극단)
  • 자연, 마을 등 현장 확장
  • 최적화된 여건(고유 공간) 마련 필요

<출처: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 ‘논의의 현장(백령)’, p.35>



여기서 잠깐, ‘전용공간의 필요성’은 ‘누가’ 필요로 한다는 것일까?
먼저, 정책적 측면에서 보자. 공간은 그 안에서 가능한 활동의 범위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간 자체의 중요성이 크다. 그럼에도 그간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문예회관같이 자체의 목적을 위해 공간의 구획과 크기, 장비가 고정되어 있는 공간을 할애하여 특정한 시간에만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겨나는 문화예술교육의 제약이 존재했는데, 이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구가 전용공간을 필요로 한다. 누구나 원할 때,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공간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정책이 존재하더라도, 지역 스스로의 필요성과 욕구가 없이는 공간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때 ‘지역’은 추상적인 의미의 개념어가 아니라, 생활하는 주민들, 문화예술 활동가들, 이전부터 있어 온 시설 관계자들, 학생, 교사, 지자체 공무원 등 그곳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람을 가리켜야 하며, 이들의 욕구가 어떻게 만나서 어떤 형태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역 안에서 주민들과 밀착되어 왕성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들을 살펴보면, 아예 애초부터 지역의 필요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간이 마련되었거나, 혹은 공공이 제안하였더라도 지역의 구체적인 욕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간의 넓이와 층고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떤’,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다.

호주의 박스 힐 커뮤니티 아트센터가 조성되는 과정은 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87년 박스힐시에서는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지역의 예술가와 주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었는데,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사실상 사용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에서는 환경 디자이너들을 컨설턴트로 선정하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사회가 원하는 아트센터의 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5개월여에 걸쳐 실시하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세부적이었는데, 지역의 현황 및 아트센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연속 회의, 지역 내 활동을 위해 지향하는 아트센터의 모습에 대한 설문조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 번의 워크숍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컨설턴트들은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아트센터의 모습을 반영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자 기회임을 분명하게 전달하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제기된 주민들의 의견을 담은 건물 조성 스케치를 전체 워크숍에서 공유하면서 형식적인 의견수렴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실현되는 것에 대한 지역민들의 확신과 신뢰가 형성되었다. 이후, 의회와의 논의 끝에 건물 리모델링이 아닌, 지역민의 목적 용도에 맞는 아트센터의 새로운 건축을 위한 예산이 통과되고, 1990년 박스 힐 아트센터가 개관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예술가 또한 형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일부 전시하거나 하는 겉도는 식의 참여가 아니라, 건축가와 지역민들을 매개하는 적극적인 역할로서 아트센터 조성 과정의 일부로 결합하여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아트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당시 조성 과정을 설명하는 짤막한 안내서의 마지막 장은 아래와 같은 문구로 끝맺고 있는데, 이 또한 되새길 만하다.
 
박스힐아트센터에서 사용한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방안(recipe) 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다른 커뮤니티와 프로젝트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 지자체와 지역사회 간의 소통이나 지역사회와의 전문 컨설팅 과정도 긍정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다.
  • 지역의 건축환경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므로, 공공 건축물을 조성할 때에는 그 지역사회의 아이디어와 관점이 건축계획 및 디자인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 지자체, 건축가, 지역사회 간의 협업은 가능하며, 함께하는 이들 간에 유연하게 조율하고 협력하려고 하는 태도 또한 가능하다.
  • 함께 참여한 혁신적 협업의 과정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상호 간 어느 정도 믿음이 필요하다.
  • 예술가들을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장식용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 무엇보다,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단순히 컨설팅만 하는 것보다 작업과정에 직접 개입하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조성되는 공공건축물은 지역사회의 자부심과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게 한다.
 
Gallery Space, Drycraft West Studio, Kitchen Lounge,출처_Box Hill Community Art Center 공식 홈페이지

< 출처 : Box Hill Community Art Center 공식 홈페이지 >


이처럼, 어떤 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 공간을 채울 누군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직접 말을 걸어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 과정은 지난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여전히 문화공간을 조성함에 있어 이 과정이 생략되기 너무나 쉬운데,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해보자는 공공(지자체, 재단 등)의 착상이 있고, 곧바로 설계가 이루어지고, 그 공간에서 가능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그 과정 어디쯤에 지역의 실체인 주체(주민, 학생, 교사, 예술가, 주요 문화시설 등)와의 대화가 끼어들 틈이 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딘가의 주민인데, 주민인 우리들은 우리 삶에서 시작하지 않는 공간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거나 알지 못한다. 나를 ‘생략’하고 ‘말을 걸지 않는’ 공간이, 어느 날 갑자기 만족도 설문조사지를 보내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지역의 삶,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화예술교육 공간들을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2017) 「문화예술교육센터 조성 및 운영방안 연구」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2019) 「삶이 예술이 되는 공간」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2019)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2019) 「문화예술교육 자원과 협력 관계」
  • 박스힐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s://www.bhcac.com.au/
  • 박스힐아트센터 조성과정 소개 리플릿 「More Than And Mortar(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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