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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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 -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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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꺽정』, 판소리로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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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환 (시인)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1992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 발굴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도서출판 고두미 대표. 시집 『붉은 눈 가족』, 『검은 밥에 관한 고백』, 『상처를 만지다』, 『말도 안되는』외 충북 문학기행산문『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를 펴냈다.
usiin@daum.net

류정환 (시인)
판소리 얘기를 하면서 충북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판소리가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생성·발전되어 온 노래 양식으로 두루 알려져 있으니까. 충북에서 활동하는 소리꾼이 없기야 할까마는, 그 소리가 죄다 남도의 것을 배워 부르는 것이니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충북과 연관 짓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충북의 소리’라고 할 만한 판소리가 제작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 『임꺽정』에 소리 가락을 얹은 판소리 <임꺽정가>.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


『임꺽정』은 충북 괴산 출신인 홍명희가 쓴 대하 역사소설이다. 장길산·홍길동과 더불어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히는 임꺽정을 내세워 조선시대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마디로 『임꺽정』은 ‘말로 그린 조선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60~70년대 엄혹한 군부독재 하에서도 금서(禁書)인 『임꺽정』을 쉬쉬하며 돌려 읽은 독자들이 많았고, 오늘날에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거니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열 권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열기가 겁난다”고 엄살을 떨 만큼 재미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



    판소리 <임꺽정가>는 지역 방송사와 지역의 소리꾼, 지역 문학단체의 협업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KBS청주 라디오 특집 ‘홍벽초와 임꺽정’의 한 편으로 녹음된 판소리는 2020년 10월 일부가 먼저 전파를 탔고, 곧이어 충북에서 열린 전국문학인대회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소리꾼 3명이 대목을 나누어 번갈아 소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당시 코로나19 방역상황에 따라 아쉽게도 일반에 공개되지 못하고 유튜브 방송으로 송출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2021년 4월, <임꺽정가>는 괴산의 한 고택에서 열린 바둑대회에 초청되어 또 한 번 공연되었다. 비가 오는 마당에서 펼쳐진 공연은 조촐했지만 일반에 공개된 첫 무대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국악 프로그램인 KBS ‘국악한마당’ 출연 요청을 받아 녹화를 마쳤고, 오는 8월 공중파를 타고 전국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 2021년 4월 3일 괴산 문화사랑방 ‘징검돌’에서 공연 (위)
▲ KBS 국악한마당 녹화 후 ( 8월 방송 예정 ) (아래)

옛것을 그저 지키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제아무리 명작이라도 박제의 꼴과 무엇이 다르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면서도 옛것의 향기를 놓치지 않은 <임꺽정가>의 탄생은 온고지신(溫故知新) 혹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좋은 사례가 되리라 믿는다. 화제 속에 첫 울음을 터뜨린 판소리 <임꺽정가>, 충북의 콘텐츠로 반듯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소리꾼들이 잘 다듬고 격조를 더하는 노력 못지않게 청중들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판소리 열두 바탕, 혹은 여섯 바탕을 거론하는 마당에 <임꺽정가>도 어깨를 나란히 하여 회자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임꺽정가> 사설을 쓴 심수영 작가 (KBS청주방송총국)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
 
『임꺽정』을 어떻게 만났고,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 대학 시절부터 소설 『임꺽정』에 대한 휘황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책장을 들춰볼 엄두가 나진 않았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어느 날 문득 꺽정이가 내게로 온 거다. (웃음) 임신 후반기로 접어들어 부른 배 때문에 바로 누워도, 모로 누워도 편하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뒤척이다가 그만! 책장에 꽂힌 『임꺽정』과 눈이 맞았지 뭔가! 순간, 그 책을 사들인 남편이 몇 해 전 히죽히죽 혼자 웃기도 하고, 인상도 쓰고, 불러도 대답도 못 할 만큼 푹 빠져 읽던 장면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게 재밌나?’ 싶어 책장을 열었는데, 아뿔싸 그게 참, 고백하건대 『임꺽정』은 절대 임산부가 열면 안 되는 위험한(?) 책이었다. 왜냐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으니까. 1권을 읽기 시작한 그 밤부터 매일 새벽까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니 임산부 몸 상태가 좋을 리 있겠나? 아침이면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고, 눈은 모래알을 넣은 듯 뻑뻑했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또 『임꺽정』을 펼쳐 들고 혼자 히죽거리고, 씨근거리고, 비죽거렸으니, 태교는커녕 딱 정신줄 놓은 상태였던 거다.


거기에 마침내 10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났을 때의 그 배신감이라니! 아니, 그래서 꺽정이패가 결국 어떻게 되는 거냐고? 이 대목에서 그냥 미완성으로 끝나는 게 말이 돼? 이 작자(作者)는 대체 어떤 작자이기에? (웃음) 결국은 그렇게 『임꺽정』이 나를 벽초 홍명희 선생에게로 안내한 거였다. 이런 작품을 써낸 인물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나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이 『임꺽정』 폐인이 될 수 있게 뭔가 판을 벌여보고 싶어졌는데, 그 마음이 결국 다큐멘터리와 창작 판소리 <임꺽정가>의 사설 구성으로 이어진 것 같다.


 
소설을 판소리로 재구성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사실 ‘어떻게 이런 생각?’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이었다. 읽는 동안 자주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문장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 그걸 흔히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 얘기를 듣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던데, 어느 대목에서는 좀 더 특별했다. 환청까지는 아니지만 (웃음) 부분 부분, 장단과 가락이 느껴지는 거였다. 마치 소리꾼이 ‘아니리’ 사설을 늘어놓는 투로 들렸다고 할까? 실제로 그렇게 상상하며 읽으면 훨씬 재미있다. (웃음) 읽어보시면 소설 『임꺽정』이 서사뿐만 아니라 문체가 가진 어조나 리듬, 딱딱 들어맞는 대구(對句)까지 판소리와 싱크로율이 놀랍도록 높은 작품이란 걸 알게 되실 거다. 풍부한 입말 표현과 함께 작품 전반에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데 이건 고스란히 판소리의 미학이기도 하니까 판소리 ‘판’을 벌이는 게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사설 작업을 할 때도 가능한 원문을 살리고, 축약이나 각색이 필요한 부분도 가능한 원문의 표현을 찾아서 살리고자 했다.


 
지역 예술가들, 문학단체와 협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처음엔 어디까지나 상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주변에 얘기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특히 25년 동안 홍명희 문학제를 열어온 충북작가회의 정민 씨가 반색을 했다. 마침 몇 해 전 충북작가회의 류정환 시인이 사설을 쓰고 서동율 명창이 작창을 해서 <칠두령가>라는 창작 판소리 몇 대목을 공연했던 경험도 있어서 의기투합이 쉬웠다. 꺽정이패가 결의형제(結義兄弟) 작당하듯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할까? (웃음) 더욱 감사했던 것은 충북작가회의에서 흔쾌히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공동기획에 참여해 제작비 일부를 후원해 준 점이다. 기획 후엔 일사천리였던 거 같다. 지역을 대표하는 소리꾼 세 분이 흔쾌히 작창을 맡아주셨고, 한 대목 한 대목 소리로 완성되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들이 놀랍고 행복했다.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주체가 아니라 지역의 예술가들,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문화 콘텐츠라서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0 전국문학인대회 공연. 왼쪽부터 소리꾼 서동율, 조애란, 조동언, 고수 김철준.


 
사설을 정리한 작가로서 판소리에 대한 기대와 바람은?
소설 『임꺽정』에 대한 헌사 중에 ‘통일시대의 고전’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한데 고전이란 또한 새로이 읽히기 위해, 새로이 해석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창작 판소리는 홍명희 선생이 『임꺽정』에 펼쳐놓은 싱싱한 민족 언어의 향연을 입체적이면서 맛깔스럽게 즐길 새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대하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는데, 창작 판소리 <임꺽정가>가 소설 『임꺽정』으로 우리 시대 독자들을 안내하는 통로가 되고, 나아가 벽초 홍명희 선생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작창에 참여하신 서동율, 조동언, 조애란 명창의 어깨가 무거우시리라. 하지만 첫걸음을 떼었으니 소설 『임꺽정』이 그러했듯 창작 판소리 <임꺽정가> 또한 저의 길을 걷고 걸어 점점 더 넓고 깊은 판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독자이자 청중인 여러분이 격하고 뜨겁게 응원해 주시길.



 

인터뷰

 

<임꺽정가> 공동기획한 문학평론가 정 민 (충북작가회의 부회장)



 
『임꺽정』은 어떤 소설인가?
1928년부터 1940년에 걸쳐 《조선일보》와 《조광》에 연재되었는데, 필자가 신간회 관계로 검거된 뒤에도 유치장에서 집필이 허용되었을 만큼 인기와 화제가 만발했던 소설이다. “천 권의 어학서를 읽는 것보다 『임꺽정』을 읽는 것이 오히려 낫다”거나 “조선 어휘의 일대 어해(語海)”거나 하는 평가들이 정말 과언이 아니다. 우리 민족 통일시대에 빛날 고전을 꼽으라면 단연 첫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임꺽정』은 어떤 소설인가? 신문 이미지



 
오랫동안 홍명희 문학제를 진행해 왔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소설 『임꺽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작가 홍명희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충북작가회의와 사계절출판사가 공동으로 문학제를 25년 동안 진행해 오고 있다. 청주와 괴산, 서울, 파주에서 진행해왔는데 최근에는 괴산 보훈단체의 반대로 괴산에서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홍명희 선생이 북한 정권의 고위직을 지냈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 이후 우리 민족의 분단을 막고 통일된 조국의 평화를 위한 삶이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하지만 소설 『임꺽정』의 ‘임꺽정’과 ‘황운총’은 괴산군 마스코트로 이용되고 있다. 독립운동가요 작가인 홍명희는 홀대받고 소설의 인물은 마스코트로 대접받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우리 민족 분단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 민족의 통일과 평화의 첫걸음을 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면서 함께 통일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평화 아닐까? 홍명희 문학제는 평화문학제이자 통일문학제다. 앞으로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이 통일의 노둣돌이 될 거라고 믿는다.
 
2019 제24회 홍명희 문학제 참가자들이 답사 중 홍명희 문학비 앞에서 기념사진.


 
소설 『임꺽정』에서 판소리 <임꺽정가>가 탄생한 건데, 어떤 의미가 있나?
판소리 <임꺽정가>는 우리 지역의 문화콘텐츠 개발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지역의 예술가들이 지역의 훌륭한 문화자원을 그에 걸맞은 예술 작품으로 다시 창작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아껴준다면, 전통 판소리 다섯 마당을 이어갈 여섯 번째 판소리가 되리라 믿는다. 욕심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소설 『임꺽정』이 ‘조선 정조’를 담아낸 ‘조선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판소리 <임꺽정가>는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조선의 판소리’라고 할 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19 제24회 홍명희 문학제 참가자들이 답사 중 홍명희 문학비 앞에서 기념사진.
 
판소리라는 양식 특성상 소리를 오랜 세월 다듬어 가야 할 텐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그렇다. 조약돌처럼 반질반질해지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관객들이 <임꺽정가>를 좋아하고 자꾸 소리꾼들을 불러낸다면 조금이나마 앞당겨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임꺽정가>를 부르고 즐길 판을 한 번이라도 더 벌여볼 생각이다.
처음 작업한 <임꺽정가> 사설은 더 길었다. 방송을 위해 많이 줄였는데, 앞으로 <임꺽정가> 완창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또, 판소리 <임꺽정가> 초연을 하고 나서는 마당놀이 <임꺽정>을 만들어 공연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소설 『임꺽정』의 다채로운 비행을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계획이고 목표다.
 


▲ 판소리 <임꺽정가> (유튜브 채널 @2020전국문학인충북대회)
2020전국문학인충북대회와 함께하는 KBS 청주 문화의 달 특집 라디오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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