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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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 -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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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서원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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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우교수로 독일문학을 가르쳤고, 충주전통문화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심고을연구원장으로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을 하고 있다. 문학에 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좋아한다. 역사의 현장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여행을 즐긴다.
skrie@naver.com

이상기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팔봉서원

살아 움직이는 팔봉서원
4년 동안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을 하다 보니 이제 팔봉서원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은 3월에서 시작해서 11월에 끝난다. 1~2월에는 사업을 준비하고, 12월에는 사업을 정리하고 결산한다. 3월 초 충주에서 달천을 따라 팔봉서원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으로 사업은 시작된다. 달천은 팔봉서원 앞을 흐르는 하천으로 가치 있는 자연유산이다. 그 때문에 달천의 역사와 지리, 문화와 예술, 환경과 생태, 사는 이야기를 탐구하는 인문학 기행이 이루어진다.

4월부터 9월까지는 배향인물 네 분의 자취를 찾아간다. 이들 현인(賢人)이 살았던 곳, 유배 갔던 곳, 묻혀있는 곳, 배향하는 곳 등을 답사한다. ‘이자의 유배지 걷기’ 행사는 두 번째 유배지 음성 음애동에서 세 번째 유배지 충주 토계리까지 24㎞를 걷는다. 20명 정도 회원들이 참여하고 15명 정도 완주한다. 4월부터 11월까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9개 서원을 방문해 그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이들 서원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때 주변에 있는 관련 서원도 함께 방문한다.

배향인물 공부는 날씨가 좋은 5월과 10월에 이루어진다. 배향인물 관련 교재를 발간해, 이들의 삶과 학문 그리고 시문(詩文)을 공부한다. 2021년에는 이자와 노수신 두 선생의 시문을 중점적으로 공부한다. 2022년에는 이연경과 김세필 두 선생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이연경 선생의 문집이 남아있지 않아 문제다. 의식과 축제도 대개 4~5월과 10월에 이루어진다. 의식으로는 춘계제향과 기영회가 있다. 금년도에는 코로나 사태로 서원과 연구원의 핵심 관계자만 참가한 가운데 5월 1일 춘계제향이 진행되었다. 기영회는 10월 9일 80세가 넘은 네 명(남자 2, 여자 2)의 지역 원로분을 모시고 축제처럼 진행되었다.


# 가을 축제,# 기영회

축제는 5월 10월, 봄가을로 2회 진행되는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가을 축제만 10월 30일에 진행할 예정이다. 축제는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배향인물에게 올리는 헌다례로 시작한다. 화선무와 현대무용이 어우러지고 경기민요와 성악(서양음악)이 어우러진다. 축제는 악가무의 3박자로 이루어진다. 출연진이 20명, 관객이 60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100명 정도 함께 즐기는 가을 시나위로 축제가 이루어졌다. ‘음악과 미술로 팔봉서원 표현하기’도 대표 프로그램으로 인기 있다. ‘팔봉서원 엘레지’를 이상기가 작사하고 이성민이 작곡해 배웠다. 그리고 이자 선생의 시 ‘자탄(自歎)’에 이성민이 곡을 붙인 ‘뜬구름 같은 인생’을 배우기도 했다. 또 노수신 선생의 시 ‘즉사(卽事)’, ‘몽유탄금대(夢遊彈琴臺)’를 창부타령 가락에 붙여 배웠다. 노래는 경기민요 이수자인 성슬기가 가르쳤다. 미술 프로그램은 ‘그림으로 팔봉(서원) 표현하기’와 ‘자유주제로 시서화 그리기’ 다. 또 캘리그래피의 기본을 배우고 마지막 시간에 팔봉서원 배향인물의 시를 써보기도 했다.


# 캘리그래피 배우기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은 11월 19일 ‘팔봉서원 옛길 걷기’로 끝난다.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팔봉서원에서 충렬사까지 달천을 따라 걸어 내려온다. 12월에는 활동 결과를 충주시에 보고한다. 중심고을연구원은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을 하면서 연구와 활동 결과를 책자로 발간하고 있다. 매년 『팔봉서원지(八峰書院誌)』를 발간한다. 2021년에 4번째 『팔봉서원지(八峰書院誌) 2021』을 발간할 예정이다.
중심고을연구원은 그간 『우륵과 가야금』(2018)과 『이자와 노수신의 시문(詩文)』(2021)이라는 교재를 발간했다. 『달천강 따라 내려가기』(2019)와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 사진자료집』(2020) 같은 활동결과물을 냈다. 중심고을연구원은 2022년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었다. 5년차 사업으로 수행할 사업명칭은 《응답하라 팔봉서원 2022》다. 2022년에는 4년간 수행한 대표 프로그램을 좀 더 심도 있게 진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수주팔봉 카누 타기와 팔봉서원 달빛기행’을 연계해 1박2일 프로그램을 처음 시도해 보려고 한다.



# 카누 타기


팔봉서원의 역사
  • 1582년(선조15) 음애(陰崖) 이자(李耔)를 기리는 서원을 계획.
  • 583년(선조16) 몽암유지(夢庵遺址) 북쪽에 계탄서원(溪灘書院) 건립.
    계옹(溪翁) 이자(李耔)와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 배향.
  • 1586년(선조19)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 「계탄서원기」 찬(撰).
    사당: 숭덕사(崇德祠) 강당: 호의당(好懿堂)
    동재: 명성재(明誠齋) 서재: 경의재(敬義齋)
  • 1612년(광해군4) 김세필(金世弼)과 노수신(盧守愼) 추가 배향.
  • 1672년(현종13) 충주 유생 한치상(韓致相) 등의 상소가 받아들여져 계탄서원이 팔봉서원(八峰書院)으로 사액.
  •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원.
  • 1998년 정부 지원과 후손들 출연, 팔봉서원 재건.
  • 2003년 6월 13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
  • 2018년 문화재청 팔봉서원 문화재활용사업(1차년도) 진행.




팔봉서원이 만들어진 사연
팔봉서원은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 있다. 수주팔봉으로 알려진 그 마을이다. 달천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전형적인 물돌이동이다. 그곳에 팔봉서원이 만들어진지는 400년이 넘었다. 사연은 1519년(중종14) 기묘사화(己卯士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묘년에 개혁을 추구했던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이때 개혁파를 이끌었던 사람이 조광조(趙光祖), 이자(李耔), 김정(金淨)이다. 조광조와 김정은 귀양을 가 죽음을 맞는다.
다행히 이자는 훈구파 남곤(南袞)의 도움으로 죽음은 면하고 귀양을 간다. 1차 귀양지는 선대 고향인 용인 지곡동이었고, 2차 귀양지는 처가가 있는 음성 음애동이었고, 3차 귀양지는 그가 선택한 충주 토계리(兔溪里)였다. 이자가 토계리 칼바위(劍巖)로 귀양 온 것은 1529년이다. 이자는 이곳에 몽암(夢庵)을 짓고, 1519년 기묘사화로 충주에 낙향해 살고 있는 이연경(李延慶)과 교류한다. 그리고 1530년에 ‘토계로 거처를 옮기다(移卜兔溪)’라는 시를 짓는다.


  • 경인년(1530) 오월 그믐에 庚寅五月晦
  • 시골 노인이 이곳에 와 집을 짓고서 野老來營此.
  • 집의 이름을 몽암이라 부르고 庵名號爲夢
  • 생과 사를 한가지로 여기며 사노라. 生死均一視.
  • 산간 시내 돌아가는 굽이에 집을 지으니 結屋山澗曲
  • 날씨는 기쁘게도 온화하구나. 風日喜舒遲.
  • 봄날의 새는 나무를 가리지 않고 春禽不擇樹
  • 여름날 방석은 그늘을 따라 옮겨간다. 夏席隨陰移.



# 팔봉서원 앞 달천 칼바위

그리고 기묘사화 이후 음성 지비천(知非川) 은거해 살던 김세필(金世弼)과도 만난다. 이때 이연경의 제자이자 사위인 노수신이 이들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 당시 충주에는 이약빙(李若氷), 허초(許礎) 같은 선비들이 살고 있었다. 1530년 섣달그믐날에는 자서(自敍)라는 이름의 행장(行狀)을 남긴다. 그리고 3년 후인 1533년 12월 15일 몽암에서 세상을 떠난다.

“몽옹이 새로 토계에 거주하여 택호(宅號)를 몽암(夢庵)이라 부르고 이에 따라 자신의 호를 몽옹(夢翁)이라 했다, 몽옹의 성품은 두루 사랑하는데도 남들이 친애하지 않으며, 후하게 베푸는데 많은 사람이 어질게 여기지 않고, 착한 것을 좋아하되 독실하지 못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되 용기가 없었다. 한 세상을 꾸물대며 부질없이 세월에 밀려 51세에 이르렀으니, 몽옹의 대략적인 인생은 이것이 전부다.”

이자는 토계에서 죽을 때까지 선비로서의 풍모를 잃지 않고 후학을 길러냈다. 이에 1582년(선조15) 봄 충청감사(忠淸監司) 김우굉(金宇宏)과 충주목사(忠州牧使) 이선(李選)이 이자를 추모해서 고을 선비들과 함께 몽암의 북쪽에 터를 잡아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후임목사 유한충(劉漢忠)과 오운(吳澐)이 뒤를 이어 힘을 써 1583년 서원을 완성하게 되었다.

먼저 사당을 세워 두 분 선생(이자와 이연경)을 모시고 ‘숭덕(崇德)’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강당을 세워 ‘호의(好懿)’라고 하였고, 그 다음으로 재사(齋舍)를 세워 동재(東齋)를 ‘명성(明誠)’이라 하고 서재(西齋)를 ‘경의(敬義)’라 하였다. 마침내 담장을 두르고 문을 만들어 종합하여 편액(扁額)을 ‘계탄서원(溪灘書院)’이라고 하였다. 서원 이름 계탄은 이자의 호인 계옹(溪翁)과 이연경의 호인 탄수(灘叟)에서 한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계탄서원장이던 강복성(康復誠)이 좌의정이던 노수신에게 부탁해 ‘계탄서원기(溪灘書院記)’를 받게 되었다.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잘 운영되던 팔봉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건물이 사라지고, 유물이 사라졌지만, 팔봉마을에 사는 전주 류씨들의 관리로 서원터는 유지될 수 있었다. 6⸱25사변 때까지 팔봉서원을 지켜낸 대표적인 사람이 류숙(柳㬘: 1870-1952)씨다. 류숙씨는 한문을 공부한 유학자로 호는 동호(東湖)였다. 충주향교 장의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류숙씨가 돌아가신 후 팔봉서원을 맡아 관리한 사람이 류장수(柳樟秀: 1933~)씨다.

그때까지 팔봉서원은 신단(神壇)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현재 팔봉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자리에 1m 높이의 흙담이 둘러져 있었다. 담 위에는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서숙(차조)대나 소나무 가지로 지붕을 이어 얹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지붕을 얹은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문을 들어가면 앞쪽으로 4기의 신단이 위치했다고 한다. 흙을 돋우고 그 위에 돌을 얹어 70-80㎝ 높이의 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잔디를 심어 일종의 묘소처럼 관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서원복원 논의가 이루어졌고, 1998년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문간공 김세필 선생의 후손인 김동윤씨가 앞장섰고,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가능해졌다. 또 마을 사람들과 충주시의 지원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류장수씨는 자신이 아는 바로는 팔봉서원 관련 기록이나 문서 등 자료들이 남아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전주류씨들이 대대로 서원을 관리했지만, 배향인물들이 자기 조상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8년 사당과 재실이 복원되고 다시 춘계제향이 제대로 올려지게 되었다. 춘계제향은 매년 음력 3월 20일 거행된다. 제향은 팔봉서원에서 준비하고 의례는 충주향교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다. 2003년에는 팔봉서원이 문화재(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충청북도와 충주시에서 팔봉서원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팔봉서원에서는 이제 건물의 유지관리와 제향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 일을 현재는 최원택(崔元澤) 팔봉서원장이 맡고 있다. 팔봉서원 재산으로는 팔봉서원 터와 밭 900평이 있다.

# 살아 움직이는 팔봉서원

# 팔봉서원 앞 달천 칼바위

그렇지만 팔봉서원은 그 동안 춘계제향 외에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팔봉서원은 죽어있었다. 이처럼 죽어있는 팔봉서원을 살아나게 만든 일이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이다. 문화재청이 주관하고, 충청북도와 충주시가 후원하며, 중심고을연구원(원장: 李尙起)이 주최하는 이 사업은 2018년 시작되었다. 첫해 사업 명칭은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였다. 4년 차인 2021년 사업명칭은 “살아 움직이는 팔봉서원”이다.

팔봉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의 목표는 크게 네 가지다. 팔봉서원과 달천 문화․관광자원 만들기, 배향인물 공부하고 알리기, 팔봉서원 예술로 표현하고 즐기기, 팔봉서원 알리기와 교류하기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으로 여덟 가지가 있다. ① 배향인물 공부하기, ② 배향인물 자취 찾기, ③ 팔봉서원 의식과 축제 진행, ④ 배향인물 종손과의 대화, ⑤ 음악과 미술로 팔봉서원 표현하기, ⑥ 달천 문화생태 체험하기: 걷기와 카누타기, ⑦ 달천 인문학 기행, ⑧ 전국의 서원 방문하기.

# 노수신 유배지 진도 답사

# 배향인물 공부하기
# 달천 인문학 기행
# 도산서원 답사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팔봉서원과 수주팔봉의 관광명소화다. 수주팔봉과 칼바위는 자연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여기에 팔봉서원을 인문관광지로 더해 가는 것이다. 둘째, 팔봉서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프로그램 만들기다. 수주팔봉에서 진행되는 카누 타기는 이미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다. 셋째가 팔봉서원의 역사 공부와 배향인물 이해하기다. 공부와 이해는 문화재 활용의 기본 중 기본이다. 넷째가 달천의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홍보하는 일이다. 팔봉서원은 달천과 연계될 때 그 가치와 활용도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자, 이연경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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