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모두가 한 해를 정리하곤 한다. 방송을 포함한 각종 플랫폼에선 한 해를 빛낸 사람들을 위한 시상식을 하고, 회사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한다.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부끄럽지만, 글 쓰는 사람들은 꼭 이때쯤 연말 결산을 기획하곤 한다. 여기는 충북문화예술교육 웹진이니까 한 해 동안 충북의 문화예술교육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돌아보는 기획이 담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다수의 기획자나 강사들이 멋들어지게 하는 말 말고, 실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면 어떨까? 기획자의 의도와 참여자의 경험이 어느 정도 같을지, 강사와 참여자 간의 관계는 바람직한지. 연말 결산이니 모든 단체의 이야기를 담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순 없었다. 충북 보은의 <흙사랑>과 청주의 <문화충동>의 참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 흙사랑
보은의 <흙사랑>은 이번 원고를 기획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내가 참여했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만 다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지역특성화>의 단체들을 살펴보다가 ‘할미꽃과 짜장면 2’라는 프로그램명을 보았고 그대로 이끌리게 되어 찾아가게 되었다. ‘할미꽃’은 참여자들인 어머님들을 상징하는 언어이며, ‘짜장면’은 옛 시절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던 ‘추억’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할미꽃과 짜장면 2’는 어머님들과 함께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잊혀가는 것들에 대해 주목하며 특히 사라지는 언어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역 출신인 송찬호 시인의 시집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어머님들의 특유의 말투. 이를테면 여기서만 쓰이는 사투리 같은 것. 강사들도 몰랐던 것들을 어머님들 덕에 다시 알게 되는 게 좋았고 동시대의 추억들을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님들이 글씨를 배우고 쓰고, 약간의 틀린 글씨도 그냥 남긴다. 옥수수는 ‘배토리’한 맛이 난다고 하며, 집 앞의 거리를 ‘삽작거리’라고 부른다. 돌멩이는 ‘이까돌’이라고 부른다. ‘시방’과 다른 단어들이 곳곳에 보인다. 어머님들이 안 계시면 사라지는 말들이다.
참여자들은 충북 보은에 거주하는 어머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 80세와 82세의 어머님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괜찮지만 이름은 부끄러우니 남기지 말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에 이름은 남기지 않으려 한다. ‘할미꽃과 짜장면 2’ 시집을 보면 다 나오지만 말이다.
Q 처음에 여기(흙사랑)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A1 : 딸이 가르쳐줘서 왔다. 20년 동안 애들만 키우다가 다 크니까 심심하더라. 그때 딸이 ‘엄마, 이런 데가 있으니 한 번 가보자.’라고 해서 왔다. 그게 벌써 7-8년 전이다.
A2 :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갑자기 ‘학교’를 간다고 해서 학교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기(흙사랑)를 설명해 주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나도 갈려’해서 따라와 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어떻게 그렇게 바로 갈 생각을 했는지. 뭐라도 배울 운명이었던가 보다.
Q ‘할미꽃과 짜장면 2’에 참여하니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
A : 처음에 올 때는 재미있었다. 이제 내 이름이라도 아는구나. 그런데 배울수록 애가 탄다.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는데 우리는 못 따라가니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Q 중학생 친구들과 수업을 하신 적도 있다고 하는데, 그때는 어떠셨는지?
A1 : 요새 어린 친구들은 머리에 뭐 이상한 걸 달고 오고 치마도 짧고, 화장도 하더라.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시방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다. 손자들도 다 그러고 다니는 걸 보니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A2 : 나이가 어려도 저런 걸 다 아는데 우리는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도 애들이 오면 좋고, 나 역시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먼저 ‘오늘은 화장 왜 안 했니?’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Q ‘수학여행’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으신지?
A1 : 많이도 다녔다. 경주, 부여, 강릉, 거제... 그중에서도 거제도에 있던 전쟁기념관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청와대도 다녀온 적이 있다.
A2 : 나도 전쟁 기념관이 기억에 남는다. 원체 눈물이 많은 성격인데 전쟁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난다.
Q ‘할미꽃과 짜장면 2’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글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 책까지 내셨는데 주위의 반응은 어떠신지?
A1 : 좋아하지. 엄마 많이 늘었다. 할머니 갈수록 젊어지네. 이런 말들 하고.
A2 : 아픈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안 좋은 생각 하지 말라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말을 해준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런 거였다. 그리고 달력이나 책이 나오면 손자 딸 것까지 다 달라고 한다. 두고두고 간직한다고.
Q ‘할미꽃과 짜장면 2’에 참여하면서 가장 달라진 변화가 있으신지?
A1 : 애들 옷 빨래하고 입히고,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는 것만 생각했다. 왜 내가 공부한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지 모르겠다. 손자 예닐곱 명을 키워줬는데 그때도 나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A2 : 요즘 드는 생각은 손자들 공부할 때 거기에 내 마음을 신경 썼으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공부를 시작해서 더 쉽게 배웠을 것 같다. 그게 원망스럽다.
Q 프로그램을 통해 글이나 그림을 배워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 있으신지?
A1 : 편지를 써 보고 싶다. 직접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내 마음이 시원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계속 오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동기가 없으면 안 올 것 같다.
A2 : 실제로 손자 중에 중국에 가는 아이가 있어서 편지를 써줬다. 딸에게 글자 틀린 게 있나 봐달라고 하니 틀린 게 더 좋을 거라고 하더라.
◆◆◆
# 문화충동
문화충동은 내게 특별한 존재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동료들을 찾다가 가장 먼저 연락한 곳이 문화충동이다. 덕분에 많은 동료들을 만나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문화충동은 여전히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가치를 생산하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청소년들과 함께 그 가치를 나누고 있다. 작년 문화충동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이었던 ‘로라의 음악공방’ 박현정 참여자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A : 인스타그램 중독자다. TMI 지만 휴대폰 총 사용시간 중 인스타그램을 60% 이상 사용하는데 그날도 평소처럼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광고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때 당시에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는데 관련된 활동이어서 친구와 함께 신청하게 되었다.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어떤 것을 기대하며 참여했는가?
A : 막연하게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을 해보고 싶었고, 비슷한 관심사의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다.
Q 만족도를 10점 만점으로 표현해 본다면?
A : 10점 만점에 8점이다. 프로그램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흐름이 끊긴 적이 있어서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당시에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고민하던 강사님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Q 박현정 참여자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이란?
A :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화예술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이나 음악, 책까지. 이런 것들을 예술가와 참여자가 함께 체험하고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특히 학생으로서 시간이나 돈도 부족하고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어려운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이걸 가능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흥미가 있는 분야의 프로그램을 직접 살펴보고 신청할 수 있어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Q 문화예술교육에서 기술교육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 문화예술교육은 실용적인 레슨이나 기술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면서 기술 교육 비중이 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물론 흥미와 재미로 참여할 수 있지만, 단순한 재미만을 원한다면 함께하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도전정신이나 목적의식이 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기술 교육의 비중이 높아진다고 해도 아까 말했던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이 흐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강사 선생님들과 참여자들이 높은 만족감을 얻는 것일 테니까.
Q 결석을 한 번 밖에 안 했다고 들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가게 했던 원동력은?
A : 학교나 학원은 압박감이 있다. 그런데 꿈다락은 자유로웠고 신선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학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내가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나의 온전한 의지로 간다는 점이 가장 다른 점이다.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강사와 참여자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A : 나는 아무래도 예체능 관련 학원을 다니다 보니 학원 선생님들과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편하게 지내는 편인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강사 선생님들과도 비슷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확실히 학교와 다른 분위기고 같은 관심사 안에서 소통하다 보니 친해지는 속도가 다르다.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A : 문화충동이 운영하는 공간인 열정공장의 무대를 노래방처럼 꾸며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티스트가 된 것 같아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참여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참여 전에는 조금 우울하고 힘든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언니가 당시에 엄청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심적으로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외적으로는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도 배웠고 악기의 소리도 구분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는 음악을 들으면 감상하기보다는 그런 쪽으로 분석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여러모로 '로라의 음악공방' 프로그램은 나에게 숲과 같은 존재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숨 막히는 일상 속에서 숨이 탁 트이는 시간이었다. 다른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