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하지만 소소한 역사 돌아보기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10조 제6항에 따라
지역문화예술교육 지원의 효율적인 실시 및 이에 필요한 참여 주체 간의 협의·조정
그 밖의 협력 증진을 위하여 충청북도와 협의를 거쳐 2013년 1월 1일 충북문화재단에
광역단위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인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지정하였다.
또한 같은 해 9월 6일부터는 광역자치단체가 재원을 출연한 지역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대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지역문화예술교육 사업 추진을 위해 별도의 지정 기간을 해제하였다.
이후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재단 내부적으론 교육지원팀을 거쳐
현재 예술교육팀으로 불리며 10여 년간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과
자체 기획사업들을 왕성히 추진해 왔다.
이 글이 올라갈 웹진 또한 센터 개소 이후로 한해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발행 되고 있는 글쓴이의 입사 동기(?)이자 자체 기획사업 중 하나이다.
# 상투적 질문은 쉽지만 대체로 말문을 막히게 한다던데
본격적으로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생각해 봄 직한
질문거리를 던져 보려 한다.
그 질문은! 문화예술교육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흔히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오래 경험하였어도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그 질문,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다.
정말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길고 지루하게 하였기에 그 대답만큼은
명쾌하게 해보고자 한다! 센터의 다양한 사업들을 직·간접적으로 진행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지탱하고 있는 현장가, 참여자, 전문가, 매개자 등
많은 관계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바
글쓴이가 내린 결론은 문화예술교육은 한마디로 ‘놀이’이다.
# 잠깐의 지식 사랑(≠자랑) Time
2010년 초판이 나온 이래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히며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저자는 인류의 궁극적 미래를
‘놀이하는 인간’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좀 더 상술하면 이 책이 내린 결론은,
인간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들어본 인간에 대한 정의인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가 아니라 호모 루덴스라는 것이다.
즉,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도,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도 아닌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 소꿉장난? 소꿉놀이!
# 잠시 잠깐 소설(≠소셜) 타임
(여기서 타임은 운동경기 따위에서 진행을 잠시 중지시키는 일을 의미함)
놀이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을 상기해 보자.
상기 저서의 결론대로라면 인류의 궁극적 미래 터전인
‘놀이터’의 환경은 정말 암울하다.
또한 놀이를 풍성하게 해줄 재료도 마찬가지여서 모래를 밥이라고 하며
실제로 떠먹여 주어 탈이 나는 불상사도 왕왕 언론에 보도되는 해프닝도 있을 법하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자기들만의 놀이 규칙을 만들고
역할도 바꿔가며 놀이를 정교하게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아이들 주변 그늘진 미끄럼틀 밑이나 그네 또는 벤치에 몸을 맡긴 아버지들은
놀이에 불만을 가진 어느 집 아이가 가장 먼저 울음보를 터트릴지를 기다리며
연신 하품을 내뱉는다.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몰입감과 즐거움은 점점 더 고조되나
그 환희는 소문난 까칠 보스 508호 할아버지에 의해 위기에 봉착한다.
“야 이놈들아 조용히 안 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이 순간을 놓칠 리 없는 아버지들의 눈동자가 오늘 처음으로 서로를 응시하기 바쁘다.
하나둘 그늘 속 얼굴을 벗어던지고
자기 아이에게 다가가 약속이라도 한 듯 환하게 말한다.
“ㅇㅇ야 이제 집에 가야지, 엄마가 얼른 들어오래.” 끝까지 비겁한 아버지의 말에
아이들은 “싫어! 더 놀 거야, 더 놀고 싶다고! 재미있단 말이야!” 울음까지 섞어가며
끝까지 항변해 보지만 아이들의 환희는 아버지의 팔뚝에 올라탐으로써 강제 진압당한다.
아이들에겐 (소꿉) 놀이였지만 아버지들과 까칠 보스님! 에겐
그저 (소꿉) 장난 (여기서 장난은 국어사전 (1) 아이들이 재미로 놀이함이 아닌
(3) 하찮게 일을 실없이 하거나 심심풀이 삼아 함을 의미)으로만 보였을까?
자신들도 아이들만 할 땐 그렇게 즐겁게 놀았으면서! 이 말이 하고 싶었다.
# 타임은 촉박하게 시간이 정해져 있다
# 현대사회 문화의 Dark side of the Moon
현대사회의 우리는 대부분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10%도 안 돼,
그러니 힘들어도 버티는 게 최선이야”라는 미명하에 생의 기간 동안
끊임없이 관계를 생성하고 그 관계 속의 역할에 충실하게 길들여진다.
그러나 역할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지고,
점점 진짜 자신인 참자아를 잊고 지내게 되어
감정의 상실을 불러오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조금은 억지스런 결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은 관계와 역할을 중시하는 이성 중심의
사회에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제가 필요하다는 크나큰 반증이다.
이쯤에서 문화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
# 그래서 예술이다
문화는 분명 어두운 면도 있고 밝은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어떠한가?
‘좋은 예술이 있다면 나쁜 예술도 있을까?’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다.
‘왜요? 위대한 작품이 있고 희소성 있는 국보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 답변에는 다르게 생각해 볼 면이 있다.
순수한 예술과 예술시장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시장은 자본주의의 일환이다. 시장에선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우열이 가려질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예술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어찌 보면 또 다른 언어의 기능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조화롭게 해줄 수 있는
예술의 기능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면 교육은?
예술의 필요성은 잘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예술은 어려운 거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역시나 예술과 예술시장을 혼동하여 나오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도 읽고 쓰는 기술(skill)을 연마할수록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어나듯,
예술을 통한 감정의 표현도 기술의 영역으로 바라보면
그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예술 언어를 먼저 배운 선배에게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문화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
# 문화+예술+교육=놀이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기 위해
이번엔 백과사전까지 동원해 보자.
요컨대, 놀이는 일이 아니다. 막연한 휴식도 아니다.
일정한 육체적 정신적인 활동을 전제로 하며, 인간으로서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기고자 하는 의지적인 활동이다.
그러니 진짜 문화예술교육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맨 마지막 문구가 아닐까?
‘그러므로 놀이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감력이 있어야 하며,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자유스러움과 놀이 주체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예술교육은?
# 기획연구개발
# 민간거점 중심 네트워크 구축
최근 문화예술교육 영역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이며 긍정적인 부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첫 번째로 그동안 강사비 지급 중심의 프로그램 소비 위주 지원 정책에서
참여 주체가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기획·연구 활동 지원 확대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다양한 주체의 자발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문화예술교육
현장 최일선 역할을 하는 민간거점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앞서 살펴본 놀이에 대한 백과사전 내용 중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맨 마지막 문구의 놀이라는 단어를 문화예술교육으로 수정해서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긴 글을 마치려 한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놀이)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감력이 있어야 하며,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자유스러움과 문화예술교육(놀이) 주체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