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민간단체 괴산두레학교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며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어떤 문화와 예술을 만나고 있을까.
비영리민간단체가 10년을 넘겼다면 그 안에서의 풍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많이 닥쳐왔을 것이다. 함께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 항상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사는 어르신들과 이 과정을 지나온 괴산두레학교의 12년의 역사는
어느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구절이 없었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글을 깨치고 삶과 자신을 이해하기까지. 깊고 숭고한 기록을 마주하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 인생은 모를 일, 어떻게 괴산두레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셨는지.
사회경험도 없었고 철도 없던 22살에 아이를 낳았어요. 남편 따라 들어온 괴산에서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하릴없는 오전 시간을 참지 못했죠.
그래서 군청, 도서관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제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찾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군에서 지역민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성인 문해 교사 양성 과정’을
딱 개설한 거예요. 당시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등록하는데 어떤 망설임도 없었죠. 그 교육을 시작으로 지역의
활동가분들과 이곳에 학교를 세우자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갔어요. 그때의 저는 무언가
큰 그림이 있었다기보다는 이미 현장에서 2, 30년 활동하셨던 분들이 가지고 계셨던
굉장히 선한 마음, 꿋꿋이 지켜나가는 가치와 신념이 멋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저렇게 사는 삶도 괜찮겠구나’ 생각한 거죠.
그러다 갑자기 민간단체를 만들고 총회를 하고, 총회 중간에 아이 올 시간이 되어서
잠시 나갔다가 오니 제가 사무국장이 되어있고요. 물론 주저되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때 제가 품었던 그 마음이 아직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렇게 괴산두레학교 사무국장으로 오래 일했고
원래 교장 선생님이 자리를 내놓으셔서 자연스럽게 제가 받게 되었죠.
교장으로서는 이제 한 4년 반 정도 되었네요.
돌아보면 괴산두레학교는 선생님들과 학교에 오시는 어르신들과 주변에
관심, 애정을 가져주시는 분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립적인 단체예요.
저희 스스로가 모든 것을 만들어나가고, 학교 구성원 모두가 내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멋진 곳이죠.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래서 마음이 뭉클해져요.
듣는 분들도 아마 그러시리라 생각해요.
- 글을 가르치던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 나아가기까지.
처음 괴산두레학교를 오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이름만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저 간판만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세요.
그래서 처음 3년간은 다른 활동 아무것도 안 하고 한글 배우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러다가 4년 차 되었을 때, 제가 ‘문화학교 숲’에 제안을 했어요.
‘문화학교 숲’은 저희 아이가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고, 같은 지역이다 보니
연결고리가 있어서 자주 소통하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사진을 매개로
나를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사진 속에 숨은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는데,
저희 어머님들에게 딱일 것 같았거든요. 3년 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시면서
배움의 갈증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되셨으니 이제 어르신들 가슴속 깊이 있는 그 한을
꺼내드리고 싶었어요. ‘내가 글만 몰랐지, 다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그분들 속엣것을
한번 풀어내 보자 생각한 거죠. 그래서 처음 괴산두레학교 이름으로 문화재단에 사업을
냈고 선정되었죠. 그리고 어머님들이 원하는 다양한 설정 사진을 찍었어요.
누구는 졸업사진,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웃는 사진, 또 누구는 연애하는 사진.
내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은 어머님들에게는 정말 생경한 상황이었어요.
사진 속에서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되었던 그 경험을 시작으로 어머님들의 마음이
완전히 열리기 시작했어요. 괴산두레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괴산두레학교 어머님들에게 문화예술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냥 해봐요, 어머니.
어머니 있는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예술인 것 같아요.’
우리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식 그리고 우리식으로 즐거운 방식.
저희는 어머님들과 그렇게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어머님들도 문화가 뭔지, 예술이 뭔지 아는 게 없다고 하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해봐요, 어머니. 어머니 있는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예술인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려요.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많은 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문화와 예술은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전문 예술가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에요. 누구나 삶에서 피워낼 수 있는 것들은
다 문화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가 작년부터 인생 노래 극장을 하는데요.
유튜브에 ‘두레 아리랑’이라고 검색하시면 저희 영상이 뜰 거예요.
보시면 음은 그대로 유지하고 가사만 어머님들의 인생을 담아 바꿨어요.
‘해 뜰 날’이라는 노래도 우리식으로 바꾸고 얼마 전에는 글로벌하게 가자고 외치면서
‘BTS’의 ‘Dynamite’도 바꿔서 불러봤어요. 우리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식
그리고 우리식으로 즐거운 방식. 저희는 어머님들과 그렇게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어요.
- 개인에서 지역으로, 문화예술교육의 확장을 위해서 괴산두레학교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받으면서 어머님들께 늘 드리는 말씀은
‘어머니도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 주변에 나눠주셔야 한다.’였어요. 사실 어머님들은
우리가 잘 하지 않는 다방면의 영역에서 이미 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계세요.
바느질부터 요리, 놀이 등등 많은 능력을 갖추고 계시죠. 그래서 저희는 지역의
초등학교와 연계해서 아이들과 어머님들을 만나게 하고 교류하게 했어요. 학교 교실에
서로 짝꿍이 되어 앉아서 수건 테두리 만들기를 하면 어머님들은 실을 바늘에
꿰는 것부터 시작하시는데 아이들과 알콩달콩 얼마나 재미있게 하시는지 몰라요.
아이들도 물론 처음에는 머쓱해 하지만 곧 수더분한 관계가 되죠. 아이들은 어쩌면
고리타분할지도 모르는 그러나 삶을 관통하는 지혜를 고스란히 전해 받게 되는 거예요.
세대가 연결되는 세대통합 문해(문화를 이해)를 실현하는 것이죠.
-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ᄎᆞᆸ(chap)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10년 전이면 제가 30대인데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고 이렇게 다시 찾아와주신 것이
개인적으로 정말 기쁘고 반가워요. 그리고 이 만남이 저희에게 한편으로는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희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눈에 띄지는 않아도
묵묵히 가시는 단체들이 많아요. 그런 단체들을 발굴해서 지금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알려주시는 역할은 그 단체에도 또 지역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해요.
새롭게 태동하는 주목받는 신진단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역에서 꾸준히 하는
단체들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먼저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찾아와주신 것이 저희에게 설레고 감동이고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 것처럼요.
"세상 어떤 누가 저에게 마냥 잘한다, 잘한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전 괴산두레학교에서 매일 매일 잘한다, 예쁘다, 기특하다, 고맙다는 소리만 듣고 활동했어요.
제가 이곳이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서로 공감해 주고 기꺼이 연대하는 힘이
저를 10년 넘게 괴산두레학교에 있게 하는 이유에요."
괴산두레학교에서 10여 년간 제작하여 배포, 판매한 어르신 시화 달력과
10년 차에 제작한 그림 자서전.
‘절대 기존의 그림을 따라 그리게 하지 않아요.
심지어 보여드리지도 않아요.
어머님이 기억하는 들풀, 어머님 손끝이 기억하는 얼굴을 그리게 하죠.
그러면 정말 놀라운 그림이 나와요.
그리고 그 그림이 더 가슴에 확 와닿아요.
어느 예술가도 표현하지 못하는 ’한(恨)‘이
바로 어머님들의 그림에서 나온다는 것이 너무 황홀한 일이지 않나요?’